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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21 [태국]와라푸라 리조트 / 코창 론니비치 숙소
집 밖/마실2015.03.21 02:05

코창은 태국에서 가장 큰 섬이다.



한 눈에 보기에도 섬은 땅의 면적이 넓고 숲도 울창하다. 반면에 바다는 작고 고요했는데, 찰랑거리는 물결 위엔 어부 없는 작은 나룻배들만이 드문 드문 묶여 좌우로 흔들거리고 있다.

하얀 모래사장 너머로 애머랄드빛 바다가 반짝거리는 풍경이 아닌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 광경은 대체로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감정을 과잉시킨다. 우리 역시 그런 풍경을 찾아 며칠 쯤은 헤메겠지만, 사실 일상의 풍경은 이와 같이 회갈색의 칙칙함이지 않겠는가. 때문에 진실로 나답고, 너답고, 우리 다우려면 일상스러운 이런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별다를 것 없는 시시한 풍경에 위안 받으며 가방을 둘러 매고 차분히 호흡한다.







고개를 돌리니 좀 전의 소박했던 풍경은 어디가고 난데 없이 커다랗고 푸른 간판에 박힌 흰 글자가 보인다.

태국어와 영어로 쓰인 환영인사에 차분함은 일시에 휘발되고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채워진다. 이런 곳에서 차분한 사색을 꿈꾸었다니 내가 어리석었구나. 위용을 자랑하는 간판으로만 보건데 이곳은 최소한 관광지 테마파크로 보여진다.

예약된 봉고차를 타고 리조트 밀집 지역인 화이트 비치를 지나 이름마저도 외로운 론니비치를 향해 간다. 그곳에 우리가 예약한 와라푸라숙소가 있다.






 


론니비치는 대부분 배낭여행객들이 오는 곳이라서 숙소가 간편하고 싼 것이 특징이지만 와라푸라만은 예외로 하고 있다. 넓은 면적에 시설과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이곳은 숙박비도 비싸서 묵을지 말지 다섯 번쯤 고민했던 기억이다.

인생 뭐 있나, 그냥 해보고 싶은 건 해보지 뭐, 라는 생각으로 1박에 10만원 가량하는 숙박비를 결제한 그곳에 당도했다. 

이 부근에서 워낙 유명한 숙소인지라 운전사도 길을 헤메지 않았다.







각종 블로그, 앱에서 보던 그 와라푸라에 입성한다. 그들이 입 모아 이야기한 대로 과연 와라푸라는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많이 나는 사랑스러운 곳이다. 






입구에 놓여진 레스토랑 이용시간과 카페 메뉴판.

아침식사 시간이 오전 7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인 것이 눈에 띈다. 지구의 공전에 따른 해의 변화와 상관없이 내가 눈 뜨고 일어나 처음 먹는 식사가 곧 아침식사라는 고객중심적 사고방식이 너무 맘에 든다. 

오냐.

마음껏 게을러주지, 라고 하고 싶다만 일정이 빡빡해서 그게 잘 되려나 모르겠다. 게을러도 된다고 멍석 깔아줬는데 그 위에는 발 한 번 못 올려보는 꼴인 거 같아서 맘 상한다.







그 외 입구에 원목들로 꾸며진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를 살펴보다가 저녁메뉴판에서 티본스테이와 무려 필레미뇽을 발견한다.

작은 숲속의 오두막같은 이 곳에서 이 무슨 거대한 메뉴란 말인가. 이것으로 이곳의 무한한 가능성은 점쳐볼 수 있게 되었다만 이래저래 상관없다. 

최소 번듯한 주방은 가지고 있으렸다, 이름만 리조트인 공간은 아니겠구나, 

하지만 난 태국 전통 음식이 더 좋은걸.. 설마하니 이곳까지 와서 누가 안심스테이크를 썰고 있겠는가 말이다, 라고 중얼거리며 발길을 재촉한다.







남편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두리번거리는 중이다. 

해변의 모래사장 위에 건축된 리조트는 객실과 수영장, 레스토랑까지 모두 바다를 향해 지어졌다. 각 공간은 모두 분리되어 있고 객실을 제외한 모든 공간은 천장이 없어서 자연 속에 그냥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레스토랑에는 마침 적절하게 석양이 지고 있고 이 순간을 놓칠 수 없는 투숙객들이 주문한 음료를 만들기 위해 직원이 분주하다.

석양의 빛은 길고도 집요하게 로비로 들어와 소파베드를 비추고 있지만 그 정다운 공간에 누워 있는 투숙객은 아무도 없다. 얼마 없는 투숙객들이 모두 코 앞에 떨어지고 있는 해를 보기 위해 바다 앞 카페 겸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고있는 탓이다. 

남편의 체크인이 끝났다. 집단 최면이라도 걸린 듯이 석양을 바라보는 그들을 뒤로하고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울창한 숲속을 걷는다. 직원은 길이 복잡해 길을 잃을 수 있으니 표지판을 잘 외워두라고 한다. 미로같은 숲 속에서 정말로 길을 잃은 것만 공포감이 엄습한다.

눈 앞에 멋진 수영장이 있고, 그 너머로 잔잔한 바다에서 석양이 지고 있었지만 우리는 길을 외우는데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숲속의 제일 안쪽, 깊은 구석에 위치한 방갈로식의 객실에 도착하자 과묵한 직원이 키를 건내고 사라진다. 그가 별다른 말이 없어도 이 곳이 우리의 방임을 알 수 있다. 

와라푸라의 객실은 모두 멀찌감치 떨어져있어 타인의 방해 없이 고요하게 쉴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들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외진 곳을 주다니, 이다지도 프라이빗할 거 까지야...

빳빳하게 풀먹은 새하얀 침구와 쾌적한 욕실을 둘러보고 나니 전면 통유리창으로 야트막한 정원과 숲이, 그 너머로 바다가, 그 위로 낮동안의 뜨거웠을 것이 분명한 태양이 마지막 힘을 모아 고요하게 소멸해가는 장면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원목으로 된 바닥엔 석양이 조용히 사그라들고 있어서 나는 어쩐지 가부좌를 틀고 자연과 명상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이 객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을 했다. 작지만 두 말할 것 없이 예쁜 방이다.  




 


객실 밖에는 곳곳에 설익은 두리안이 열려있고 옥상에는 선배드가 놓여있다. 옥상에 올라서니 그제야 아래에서는 안 보였던 다른 객실이 드문 드문 보인다. 이곳은 면적에 맞지 않게 객실이 참 없는 리조트라는 것을 그 때 알았으며, 동시에 숙박비가 (론니비치에 비해)비싼 것을 이해했다.

산책, 이라는 표현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 뒤로 객실 주위를 두루두루 산책했다. 숲길을 걸으며 낯설은 나무를 유심히 보기도 하고 대나무를 이어서 만든 의자에 앉아 보기도 한 후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손을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간 순간 나는 경악한다.

욕실엔 개미가 드글거리고 있었다.

사람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크고도 까만 개미들이 세면대를 타고 변기를 타고 올라 벽에도 붙어있었다. 

작고 아름다운 방에 대한 기억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우리는 당장 프론트에 방을 교환해줄 것을 부탁했다.







다행히 평일이라 여분의 방이 있는 모양이다. 

직원이 새로 내민 열쇠가 가르키는 객실은 수영장 바로 앞이었다. 주위엔 손이 뻗으면 닿을 공간에 두리안이 자라고 있고, 분명하게 붉은 꽃이 만개해 있다. 뿌리에 가지를 올리고 새싹을 틔운 고목나무 한 그루와, 고목에 가지 없이 잎을 내리고 있는 신기한 나무들도 있었다. 하나같이 이국적이고 신비한 모양새를 가진 식물들이다. 

하긴, 여긴 이국이니까 뭐.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 가서 새로운 방에 짐을 풀었다.

작고 아름다웠던 전의 방과 다르게 새로운 방은 크고 아늑했던 방이었다.

좋았던 점은 욕실 천정이 유리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밤엔 아무렇지 않은 욕실이지만 낮에는 햇살이 천장을 통과해 하얀 벽을 타고들며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이하게 빨래줄과 원목 건조대도 있었다. 아무래도 이 객실은 여러명의 배낭객이 투숙하기 좋은 방인 것만 같다. 넓은 객실 뿐 아니라 욕실도 몇 명이 빨래를 하는 동안 몇 명은 씻을 수 있을 만큼 넓었다.

무엇보다 개미를 한 마리도 못봤다. 전망도 나쁘지 않고, 프론트와 가까운 거리에 넓은 객실을 얻을 수 있어 다행이다.







 


어느새 석양이 끝물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카페에서 석양을 바라보는 집단최면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도착하니 투숙객들이 모두 허리디스크라도 걸린 양 모두 누워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따라해본다. 곧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별이 하나 둘 올라온다. 처음부터 누울 생각까진 없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스스륵 눈까지 감기는 것이다. 옆자리 커플은 속삭이고 파도소리는 일정하게 귀를 친다. 잡념이 사라지고 단 하나의 욕망이 서서히 고개를 든다.

"여보, 나 배고파"






참고로 와라푸라 카페에서 시킨 음료는 맛있다.

대체로 맛있는 게 아니라 정말 훌륭하다.

양도 많다.

하지만 난 배고프다.

씹어 삼킬 것이 필요해.







배고프다는 나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을 뒤로하고 

나는 방콕에서 공수해온 망고스틴을 부지런히 까먹는다. 곧이어 남편도 합세해 금새 한 봉지를 다 까먹고 나니 더욱 배가 고프다.

석양은 지고,

별은 오르며,

연인들의 사랑이 익어가는 만큼,

나의 배고픔도 깊어지고 있었다.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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