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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03 묵은지감자탕이 사람 잡네
집 안/창영식당2015.02.03 14:30



문득 엄마가 묵은지 감자탕을 들통에다 한 솥 끓여둔 것이 생각난다. 

엄마는 겨울철마다 잊지 않고 늘 감자탕을 끓였다. 나는 그 감자탕을 식사 때는 물론이고, 출출할 때마다 집안을 오가며 한 그릇씩 퍼먹으며 자랐다. 며칠 물리게 먹다보면 뼈에서 살이 저절로 발라져 국물에 녹아드는데, 

물리다, 지겹다, 냄새도 맡기 싫다, 엄마에게 볼멘소리를 해가면서도 넓은 대접에 밥을 퍼서 고기 살점 가득한 국물에 말아 먹었다.


"엄마 묵은지 감자탕 만드는 거 어려워?"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까짓 게 무슨 요리 축이라도 끼니? 젤 쉬운 게 감자탕인디."


그렇게 엄마의 말에 용기를 얻어 시작했다가 지금은 엄마에게 드는 배신감에 부들부들 몸둘 바를 모르겠다.

엄마, 그러는 거 아니시죠. 만드는데 5시간 넘게 걸렸어요.

그래도 뭐, 추운날엔 뭐니뭐니해도 뜨끈한 국물요리가 채고시니까 

기왕에 끓여본 감자탕이니까

오랜만에 요리 포스팅을 해본다.



묵은지 감자탕 재료
주재료 : 5시간, 가스불
부재료 : 돼지등뼈 한 대, 묵은지 한 포기, 시래기 한 줌, 감자 4알, 대파 1대, 마늘 한 줌, 후추, 소주, 커피, 청양고추 2개, 깻잎 10장, 표고버섯 1개(생략해도 무방)
양념 : 된장 3큰술, 들깨가루 3큰술, 고추장 1큰술, 다진 마늘 2큰술, 간장 1큰술 (양념은 입맛대로 가감하시길)





우선 5시간 중에 세 시간을 핏물 빼는데 사용해야 한다.

잘라온 등뼈를 찬물에 담가놓고 두어번 정도 물을 갈아준다.

생각보다 계속 계속 핏물이 배어나오니 적어도 3시간이고, 시간 많으면 아예 그냥 하룻밤 재워도 좋다.

핏물을 뺀 등뼈는 꼭 고무장갑을 끼고 흐르는 물에 박박박 깨끗하게 씻어줘야 한다. 고무장갑을 안 끼면 손에 돼지기름이 알알이 박히게 되는 아름다운 현상을 경험하게 되니 꼭 고무장갑을 끼자구나.





이제 한 번 바그르르 끓여보겠다.

돼지 누린내를 없앨 수 있다고 소문난 민간요법은 죄다 투입해도 좋다.

나는 우선 후추와 소주를 기본으로 깔고 집에 널려있는 오래된 원두를 갈아서 핸드드립으로 내린 커피를 부어줬다.

평소에는 핸드드립 겁나 안 되더니, 감자탕에 넣으려고 하니까 왜 난데없이 커피빵이 빵빵하게 부어오르고 커피가 겁나 맛있는가.

하여간 그렇게 맛있는 커피와 물을 붓고 바글바글 끓이면 돼지등뼈가 완전 똥물에 잠긴 형태가 되는데 그럼 완성이다.






이제 똥물을 버릴 거다.

어차피 저 따위 색의 궁물 먹고 싶지 않아.

국물을 아낌없이 죄다 버리고, 등뼈를 또다시 흐르는 물에 박박박 씻어준다. 당연히 고무장갑 꼭 껴라. 안 끼면 정말 손이 돼지기름으로 반들반들..우...우...우엑.

다 씻었으면 또 끓여줘야 한다.

이제부터 끓이는 물은 나의 위장에 들어갈 국물이므로 마음을 경건하게 잡숩고 마늘, 대파, 소주도 다시 쪼르르, 물 붓고 끓여준다.





감자탕이 끓을 동안 이제 삶은 시래기와 야채를 준비해보자.

하아... 벌써 4시간이 지난 건가.. 

부엌은 이미 돼지 누린내로 가득하고 나는 갑자기 등산이 하고 싶다. 신선한 공기 맡고 싶어졌어.




그래도 등산에 대한 열망은 접고 계속해서 요리에 매진하기로.

삶은 시래기에 양념 모조리 때려 넣고 조물조물해서 재워놓고, 환기 좀 시키면 좀 괜찮을 거 같지?

노노, 가스렌지 위에 등뼈가 끓고 있는 한 이 누린내는 어쩔 수 없다.

다 부질 없는 짓이었어...




냄비가 다 끓었다. 이제 마늘과 대파를 건져내야 하는데... 젓가락으로 불가능.

아오 미치겠네.

등뼈 하나 하나 다 건져내고 나서야 대파와 마늘은 모습을 드러내신다.

버려버려. 가차 없이 버려버려. 단물 빠진 니네들 필요 없어!

그리고 나서 등뼈를 다시 궁물과 합체.

거의 다 왔어.

이제 다 됐어.





냄비에 아까 조물조물해둔 시래기 싹 다 올리고, 묵은지랑 흥건한 국물도 아낌없이 부어준다.

난 포슬포슬한 감자 갈라먹는 것을 좋아하니 감자도 올리고 이대로 1시간을 끓여.

오랫동안 끓여야 이쁘고 맛있다.

가스불아 힘내. 가스비는 남편이 낼 거야!

그렇게 오랫동안 끓인 후 대파 쫑쫑, 깻잎, 들깨가루 넣으면 이제서야 대망의 묵은지 감자탕이 완성됐다.

하아.. 나 너무 고생했어.

하아.. 나 정말 근사해..

하아.. 나 정말 짱인 듯.




5~6시간 걸려서 만든 묵은지 감자탕 완성.

맛있다.

밥이랑 같이 먹으면 천생연분

등뼈 살 발라서 묵은지 찢어서 같이 먹으면 찰떡궁합

오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심까

오랜시간 고생했지만 보람있네 보람있어.

며칠동안 밥상에 계속 감자탕만 올리니까 나는 편하고 남편은 물리고.

좋군아.





TIP: 3일을 먹어도 남는 건 살만 발라서 이렇게 지퍼백에 넣어서 냉동실에 보관하면 된다.

먹고 싶을 때마다 반 팩씩 꺼내서 밥 말아 먹으면 속이 든든든.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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