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마실2015. 1. 2. 18:44


산책하고 왔다.

어릴 적에는 어르신들이 산책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 심심한 일을 왜 하시나'하곤 생각했는데

나도 나이가 먹은 거신가

이어폰 꼽고 홀로 동네를 둥실둥실 떠다니는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이젠 별 일 없어도 틈틈히 한다.

집 안 생활자가 아니라 동네 산책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커다란 곰돌이가 버려졌다. 

추운 날씨에도 애가 여유롭게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니 고놈 참 성깔있어 보인다.

더구나 곰돌이는 등 뒤에 형광등까지 숨기고 있다.

내 비록 버려졌지만 패기는 잃지 않았어! 다 덤벼!!

라고 말하는 듯한 모습


버려진 근방에 주인이 있을텐데

이곳에서 점점 검은 때가 묻어가는 곰돌이를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이 할까?





붉은 벽돌의 2층 주택

아치형의 커다란 창문

마당 중앙에 동그란 정원

건축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아주 오래 전에 고급스러움을 강조하여 지은 주택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낡아서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만

저 창문 너머로 홈드레스를 입고 간식을 만드는 부인과

머리를 단단히 동여맨 어린 아이가 피아노를 치며 즐거워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화단의 구석에서 발견했다.

이게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문득 예전에 읽은 책에서 묘사된 쥐 덫과 생김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궁금해서 들어도 보고, 작동도 해보고 그렇게 계속 만져댔는데,

용도가 쥐 덫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른 화단으로 던져놓았다.

쥐 덫으로 추정되는 이 물건은 건물만큼이나 낡아서

온통 녹이 슬어있었다.




또 걷다보니 거리에 누군가 버려놓은 스탠드가 보인다.

이 스탠드의 전 주인은 로코코양식을 좋아했나보다.

마리앙뜨와네트가 사용했다고 해도 믿을 만큼 

찬란하게 공주풍이었다.

전등의 유리가 깨져서 안타깝지만

이미 누군가는 버린 물건이다.

버린 물건은 어쨋든 가차없이 불쌍하기 마련이라서

어느 한 지점을 두고 안타까워 하지 않기로 한다.



난 너희같은 일반 쓰레기와는 달라

라고 말하는 듯한 깨진 공주님.

누군가 분리해논 것일까

아니면

버린 사람이 애초에 일반 쓰레기와는 멀찌기

떨어트려 버려놓은 것일까.



이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무엇이 있을까 해서 올랐더니

넓다란 공원이 나왔다.

그곳에선 아이들이 시소를 타고 

이 추운 날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모래장난을 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온통

낡은 건물, 버려진 것들만 보다가

넓다랗고 아름다운 공원에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니 흡사

천국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곱아진 골목으로 방향을 틀고 

언덕의 꼭대기까지 오르니 

산 밑에 조그만 텃밭이 있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작은 땅덩이를 경작해가는 삶이 있었다.

텃밭은 어느 교회의 지붕과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때 밝혔던 것으로 추정되는 전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단단히 매어진 전선이 

이 시대에 교회가 가진 위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조금 감탄했다.



외부에서 보이는 교회의 기도실

혹시나 하고 문을 열어보니

잠겨있었다.

기도의 시간은 교회가 관장하고 있었다.



산과 주택의 경계에서 계속 거닐다가 이어폰 캡을 떨어트렸다.

이미 날은 어두워 찾을 수 없는데

그래도 찾아보겠다고 스마트폰 후레시 불빛을 켜고 바닥을 훑는다.

누군가 버린 담배꽁초

짐승들의 털

이미 오래전에 버려진 듯한 비타민 음료병

썩어가는 검은 비닐봉지

축축하고 더러운 흙

불연듯 이 곳에서라면 죽은 쥐를 발견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 없다는 생각에

불과 3일 전에 끼운 이어폰 캡을 포기한다.

내내 즐거웠던 산책길이 순간 속상함으로 번진다.



집으로 오는 길에 발견한 중국집

우연히 전단지에서 상호를 본 듯도 하다.

나는 배달음식을 선호하진 않지만

그래도 먹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이 집은 피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집으로 총총총


어느새 해는 지고 골목의 가로등이 환하다.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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