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마실2015. 1. 12. 04:00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곳이 호텔임을 자각하는 순간은 

늘 하얀 이불보를 보면서 시작된다.

창가에 채광이 부드럽게 쏟아지기 시작하면

금붕어가 소라껍데기에게 하듯 요란하게 이불을 빠져나온다.

밤새 나를 안녕하게 보살펴 준 이불을 돌아보면

이다지도 맑게 구겨져 있다.

매일 빨고 빳빳하게 다려야만 가능한 구김들

나는 지나온 밤에 대한 흔적을 

아침 나절 오랫동안 침대에 걸터앉아

쓰다듬으며 베시시 웃는다.




창 밖에 눈이 내리고 있다.

쌓인 모양새를 보니

눈님 방문하신지 꽤 된듯하다.

아. 나이스 타이밍

눈 맞으면서 노천할 수 있겠구나

그게 그렇게도 로망이었는데

으흐흐흐흐흐흐흐

눈님, 부디 길게 머물다 가셔요~




숄을 걸치고 빼곰히 복도에 나가본다.

천천히 눈이 내리고

고요한 담양리조트

거룩한 담양리조트

눈에 묻힌 담양리조트가 되어 있었다.

눈 뜨자 마자 이런 멋진 설경이라니

기분이 너무 좋다.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가다가 멈추고 

눈이 내리는 걸 가만히 지켜본다.

저절로 숨을 참게 된다.

비와 다르게 참 천천히도 내리는 구나

조심스럽게 자기 자리를 찾아 소리 없이 앉는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왜 사람들이 내리는 눈을 보며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지 알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여간 눈은 참 신비롭단 말야

자연의 것 중에 그렇지 않은 것이 어디있겠냐만



아침식사

밥묵고 온천을 할 예정이므로 간단하게 먹기로 했다.

북어국과 전복죽을 시켜보았는데

맛깔진 반찬 덕에 간단해지지가 않고 포식을 으헝헝헝

전복죽은 딱 봐도 전복이 안 보이네.

그래 산골짜기에 와서 전복죽을 시킨 거 차제가 좀

무례했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자 이제 온천 출동.

멍하니 내리는 눈을 보며 가슴이 콩닥콩닥 하다가

남편이 솜바지 찍어준다길래 급모델포즈. 

아이구 짧구나 짧어

혹시나 해서 가져온 아이템이었는데 참으로 편하게 잘 입었소

다만 이거 입고 호텔 로비를 돌아다녀야 할 땐 정말 빛의 속도로 움직여야만 했다.

아 챙피해

호텔 직원들 미안해요.

투숙객들 미안해요.



온천물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간 밤에 욕조에 물 받아서 씻으면서 좀 눈치챘지만

매끈매끈 레알 온천수

대충 씻고 기다리 고기다리던 노천탕으로 고고

아까 전에 마음씨 곱던 눈은 어디로 가고 그새 성질난 눈이 옆으로 내리고 있네?

칼바람 쌩쌩 불고, 탕 주위로 심어놓은 대나무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눈 폭탄을 투하하고

알몸으로 오들오들 떨며 탕으로 가는 길이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아이고 추워라. 얼어 죽겠네를 연발하며 탕 안에 들어가니

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천.국.이.로.다.


추워서 얼굴은 꽝꽝 얼어붙고

머리카락은 이미 얼었는데

몸은 온천물에 후끈후끈

모두다 내 맘 같은지 탕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머리만 동동 떠있는 상황

아따 겁내 좋구마이~

아주 천국이 따로 없어부러~

오메오메오메 바람이 워째 이리 허벌나게 불어닥친당가.

눈을 언제 그칠라요. 집에 갈 때 큰일나겄쓰다.

집이 어딘디요?

시내서 와써라~

아이고마 광주분이고만요잉~ 

시끌시끌한 아주머니들의 담소에 기죽어서 한 마디도 못하고 온천만 했지만

그런 아주머니들 100명이 있어도

다시 가고 싶은 온천이요, 다시 하고 싶은 노천이었다.


담양에 가서 펜션에 묵을까, 리조트에 묵을까 고민하시는 분들 참고하셔요

온천물이 허.벌.나.게. 좋아부러요.


 



때를 빼고 광을 냈으니 이제 죽녹원으로 가보자.

가는 길이 이렇게 이쁜데

죽녹원은 얼마나 이쁘려나

두근두근

세근세근세근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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