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어머님의 휴대폰에서 영어교육용 앱을 발견했다.

"어머님 영어공부하시게요?"

"아, 으응.. 하려고 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지금은 하다 말았어"

어머님은 멋쩍은 억양으로 며느리인 나에게 입을 열었다. 처음엔 할 만 했는데 점점 난이도가 올라갈 수록 진도를 따라잡기 어려워서 포기했다고.

살펴보니 과연 그럴만 했다. 지나치게 문법위주인 커리큘럼과 발음기호도 잘 되어 있지 않아서 문장을 읽기도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어머님은 그 엉터리 영어교육 앱을 지우지 않으셨다. 언제가는 공부하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존경스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어머님이 왜 영어를 공부하시려고 생각하셨나 보니

주변에 온통 영어다.

의식하지 못했을 뿐, TV나 간판 등 기본적인 것들이 영어로 되어 있는데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울 (친정)엄마도 영어를 못하신다. 그러고 보니 엄마랑 손잡고 산책하던 중에 가는데 엄마가 저 멀리 큰 건물을 가르키며 내게 물었다.

"저 글씨가 모텔이란 글씨냐?"

그곳엔 쓰여진 간판은 다음과 같았다.

Rainbow Motel 모텔

엄마는 한글로 쓰여진 모텔이란 글씨로 영문자 알파벳을 추측한 것이다. 아마 내가 길거리의 한자를 읽지 못해서 느끼는 답답함과 비슷하겠지. 그러고 보니 이 땅엔 왜 미디어와 상업용 간판들에 죄다 영어와 중국어가 난무하는가.

언짢기 그지 없다. 흥.

덕분에 영화 보는 내내 시어머님과 친정 엄마생각을 많이 했다.





거실이 보인다. 화면 가득한 화려한 가구들과 넓직한 집의 평수를 보건데 인도의 상류층 가정이 분명하다. 

안주인 샤시는 그 넓은 집을 똑부러지게 관리하고 있다. 바지런히 아침식사를 차린 후, 남편과 아이들을 식탁으로 불러 모았다. 남편은 자상하고 아이들은 귀엽다. 남편이 회사로, 아이들이 외국인 학교로 가면 주방을 정리하고 인도의 디저트격인 라두를 빚는다. 남편은 돈 걱정도 없는 사람이 왜 이런 것을 만들어 파냐며 못마땅해 하지만 그녀가 파는 라두는 늘 인기 만점이다.

이렇게 훌륭한 아내이자 엄마인 샤시이지만 사실 가족에겐 늘 구닥다리 취급을 받고 있다. 가족들은 그녀가 영어를 못하는 점을 들어 무시한다. 가족에게 상처받은 샤시, 우연히 조카의 결혼식 문제로 뉴욕에 갈 기회가 생겨 가족 몰래 한 달간 영어 회화학원을 다닌다. 

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샤시에게 따뜻했다. 곧 그들과 친하게 지내며 영어를 빠르게 배워나갔다.

영어 공부의 기쁨에 눈 뜬 샤시, 아내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못마땅한 남편, 여전히 엄마를 무시하는 딸...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난다. 이윽고 조카의 결혼식에서 그녀가 축사를 해야하는 시간. 샤시의 이름이 호명되지만 남편이 일어나서 말한다.

"제 아내는 영어를 못합니다"

그 때 샤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툴지만 영어로 얘기한다.

"가족에겐 서로 상처를 주면 안 됩니다..."라는 말로 포문을 연 샤시의 축사에 하객들은 감동하지만 정작 샤시의 가족들은 고개 숙인 채 반성하고 있다. 딸은 꺼이꺼이 울고 있다.

결혼식은 성황리에 끝났다. 하객들은 그녀가 만든 라두를 먹으며 행복해하고, 그 모습을 본 남편은 그녀가 자신의 아내인 것이 새삼 고맙다.




샤시의 딸이 유난히 싸가지없길래 영화를 보다 말고 감독을 찾아봤다. 

여자일 거야.. 여자일 거야..

지 얘기일 거야.. 지 얘기 일 거야..

지가 엄마한테 이렇게 불효했겠지. 

실제로 엄마가 뉴욕에 가진 않았겠지만, 나이 먹고 나니 철 없던 시절에 엄마한테 했던 말이 후회됐겠지.

내가 그 맘 알지.

나도 엄마 속 엄청 썩인 딸이었거든.

그렇게 생각하며 검색해보니, 얼레? 진짜 여자감독이다. 

후후후후후후후, 거봐라. 내가 불효 좀 저질러 봐서 이런 불효적 영화들은 허구인지 아닌지 감이 딱 온다니까.

으쓱으쓱

(뭐 이런 걸 자랑이라고...)



인도에서 사리(인도 정통의상)를 입은 샤시는 너무 예쁘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뉴욕 한복판에서 사리를 입은 그녀가 등장하자 나는 어쩔줄을 몰랐다.

아우 엄마.. 그거 입고 뉴욕에 가면 어떻해!! 뉴요커가 엄말 뭐라고 생각하겠어!!

하지만 괜찮아. 첫날이니까 그럴 거야.

그런데 둘 째날에도 사리를 입고 뉴욕 스트릿에 등장했다.

당당한 사리패션에 이젠 내가 부끄러워진다. 

뭐 어때. 자기가 좋아하는 옷 입었는데. 뉴욕에선 양장만 하란 법 있나.

나중에는 제발 그녀가 사리를 벗지 말길 바라게 되었다. 

고맙게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사리만 입고 나온다. 심지어 하나같이 화려하고 이쁜 사리들. 역시 상류층 사리는 다르구만. 내가 인도에서 본 수드라의 사리랑은 급이 다르다.




제일 속 시원했던 건 남편의 변화였다.

딸이야 뭐 철 없으니 그렇다고 치지만, 남편까지 샤시가 영어를 못한다고 은근히 무시했다.

그럴거면 학원이나 보내주고 공부하라고 하던가, 꼴에 또 겁나 보수적이어서 마누라가 요리해서 밖에서 파는 것도 못마땅하고, 뉴욕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싫어하고.. 겉보기에만 자상한 남편이지 체감 보수치가 99프로인데 그걸 어따 써먹겠어?

그런데 나중에 샤시의 영어축사를 듣고는 반성한다. 반성이 지나쳐서

"아직도 나 사랑해?"하고 묻기까지 하다.

올바른 결말이다. 이제 선택권은 샤시에게로.


놀랐던 건 OST가 너무 좋아서였다.

사리를 입은 샤시가 뉴욕의 명품가를 돌아다니는 배경으로

맨~허튼! 매엔~허튼! 

루이 비똥비똥

발렌 티노티노

완전 흥겹고 빵터졌다. 

어머 유투브에 있네. 얼른 얼른 첨부 첨부.


https://www.youtube.com/watch?v=jvIaluknw9k#t=33


http://youtu.be/jvIaluknw9k



사실 전에 봤던 영화 <런치박스>가 너무 좋아서 인도영화 한 편 더 보려고 검색하다가 본 건데, 가족영화에 해피엔딩이 주는 훈훈함으로 보면서 계속 기분이 좋았다.

기발한 지점도 있고, 재밌기까지

덕분에 즐거웠다.

추천!




굿모닝 맨하탄 (2014)

English Vinglish 
8.9
감독
가우리 신드
출연
스리데비, 아딜 후세인, 메디 네브부, 프리야 아난드, 술라바 데쉬판데
정보
드라마, 코미디, 가족 | 인도 | 133 분 | 2014-02-06
글쓴이 평점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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