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창영식당2015. 2. 11. 23:00


인생 오래살고 볼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몇 번 있다.

듣도 보도 못한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나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좋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책을 발견했을 때처럼

뜻하지 않은 크고 작은 행운을 만날 때가 그러하다.


일본 나가사키 지방의 카스테라를 처음 먹어봤을 때도 그랬다.

몇 백년 된 전통을 가진 명인의 손길을 거친 카스테라였는데 

포슬포슬한 우리의 카스테라가 아니라 촉촉하고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 일품인 카스테라였다.

카스테라의 밑바닥에는 설탕의 결정체가 녹지 않은 채 박혀 있었고

설탕은 입안에서 부서지며 카스테라와 한데 섞이며 감동을 자아냈다.

촉촉한 질감 탓에 카스테라를 먹으며 우유의 생각을 갖지 않았던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가사키하면 한국에는 짬뽕만 알려져 있어서 내심 서운했는데

우연히 여의도길을 산책하다가 나가사키 카스테라 집을 발견하고는 빛의 속도로 뛰어들어갔다.






알고보니 나가사키 카스테라는 이미 유명해서 가게가 체인점으로 많이 있는 상황이었다고.

아 너무 기뻐효.

흑흑흑 

하아...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한국에서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맛볼 수 있다니..

방사능 걱정 안하고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맛볼 수 있다니!!!


"이거 정말 나가사키 카스테라랑 맛이 똑같은 거죠?"

기쁨에 찬 나의 질문에 사장님은 말씀하셨지.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으응?

뭐냐.. 이 찝찝한 대답은?

그래도 비슷한 맛이래잖아.

얼른 겟겟겟

플레인 하나, 녹차 하나 주세염.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가게를 찰칵 찰칵

아오 귀여워

가게 전체가 귀염 열매를 드셨나



아오 앙증맞아.

소품 전체가 앙증 열매를 드셨나.

드디어 주문한 카스테라가 나오고 

나는 이 소중한 카스테라를 빨리 먹기 위해

급히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택시 안에서 카스테라를 가슴 깊이 보관하며

나는 얼마나 두근거렸던가.

정말 나가사키의 맛이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는 한 조각씩 아껴 먹고 아껴 먹으리라.

상쾌한 설탕 덩어리가 내 어금니에서 부서지면

내 흉측한 몰골 따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온 몸을 비비 꼬리라.

빨리 달려라, 택시여.

얼른 화곡동 나의 집으로 가자꾸나.




도착하자마자 옷도 안 갈아입고 사온 카스테라를 코타츠에 올려놓고 사진 찍었다.

박스 디자인하며, 포장 한 번 예술이시다.

아 귀여워

아오 귀여워




개봉했다.

스멜 좋아~

벌꿀로 만들었다더니 단내가 폴폴 풍기는 것이 아오 좋아.

살짝 손 끝으로 만져보니 촉촉해.

한국의 포슬포슬한 질감이랑은 확실히 다른 촉촉함.

아..

빨리 먹고 싶다.





바닥면.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

콕콕콕콕 박혀있는 설탕좀 보소

입 안에서 저 설탕들이 날아다니며 춤을 추겠구나

으흥흥흥흥~~~

녹차도 개봉해봐야지.

아오 빨리 먹고 싶어.




>>ㅑ~~ 역시 냄새 좋고

구멍 뚫린 단면 좋고

바닥에 설탕 좋고



커피랑 마셨다.

말차랑 마시면 더욱 좋겠지만 지금 우리집에 말차따위 있을리가..

내가 나가사키 카스테라에 빠져 사진을 찍는 동안 

남편님은 원두를 부지런히 갈았지...

우리부부는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만날 생각에 온통 들떠있었다고.

그렇게 한 입 딱 넣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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읭?

이게 뭐여??

이거 나가사키 카스테라 맞어??

촉촉해야 하는 질감은 찐득거림으로 변모해 이에 좍좍 붙으면서 실망을 예고하더니

단 맛은 또 왜이리 강한지, 한 입 먹고 커피를 꼭 드링킹 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을 동반하고

설탕의 상쾌함은 완벽하게 따로 놀아서 날 외롭게 했어.

으헝헝헝 ㅜㅜ


내가 일본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너무 맛있게 먹었나?

배고플 때 먹어서 그랬던 건가?

아니면 사찌 여의도 지점만 좀 별로인 건가?

누가 내게 말 좀 해줘 ㅜㅜ


아무튼 사찌 카스테라, 두 번은 안 사먹는 걸로~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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