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창영식당2015. 2. 13. 22:30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고 망상하기를 즐겨하는 정적인 생활패턴을 가진 내게 각종 차는 늘 관심이 많은 품목이고

머그컵, 컵받침, 표일배와 같은 도구는 아끼는 사물이 된지 오래다.


나는 물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물을 많이 마셔야 피부도 이뻐지고 몸에 노폐물도 빠진다는데 이상하게 두 모금 이상 마시면 목이 탁탁 막히는 거부감이 든다.

대신에 차를 많이 마시는 편이다.

다양한 차를 구비해놓고 하루 종일 마신다.

몸이 찬 편이어서 녹차와 메밀, 보리는 피하고 

옥수수 알맹이, 결명자, 느릅나무 차를 식수대용으로 마신다.

식후에는 커피, 홍차, 중국차, 전통차를

잠들기 전에는 주로 허브티를 마셔댄다.


차 맛으로만 보자면 솔직히 한국 전통차는 속상할만큼 맛이 없다. 

달큰하고 향기로운 중국차에 비해 풍미도 떨어지고

쓴맛으로 입 안을 정리해주는 일본차에 비하면 깔끔함도 모자라고

향기로운 허브티에 비하면 그저 그런 맹물 수준이다. 

커피와 홍차만큼 중독적이지도 않고, 다양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한 잔의 차가 음식과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시나

우리 음식에는 우리의 차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 우리 부부가 먹는 식탁의 모습.

전형적인 한국인의 밥상이다.

된장찌개, 멸치볶음, 양파 고추 장아찌, 김치, 깻잎무침, 황태포 무침, 각종 김치...

살펴보면 모두 짠 음식들이다.

저장음식이 발달했던 한국인의 밥상에는

밥과 함께 짠맛을 곁들이는 DNA가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짠 음식을 먹고 난 후 마시는 차는 뭐가 좋을지 생각해보자.

달큰하고 향기로운 재스민은 뭔가 안 맞는다. 보이차도.. 우롱차도 너무 강한 느낌이다.

역시 중국차는 기름진 음식을 먹고 난 후라야 맞는 느낌..

커피와 홍차를 마셨다간 얹힐 거 같다.

입안에 짠 내와 마늘냄새가 남았는데 허브티도 안 되겠다.

오래도록 마시면서 입안에 짠 기를 우려내고 마늘냄새를 천천히 없애려면

역시 밍밍한 한국차라야 맞지 싶다.

구수한 현미녹차이거나, 발효차이거나...

오늘은 일전에 남원 지리산자락에 위치한 실상사의 느티나무 매장을 방문해서 사온 감잎차를 열어봤다.




느티나무 매장은 유기농으로 만든 제품만 판매하는 집이다.

농부의 전화번호까지 적혀있을 정도로 품질관리에 만전을 다하고 있는 집.

감잎차는 떫은 맛과 향기가 마음에 들기도 하고 탄닌과 비타민이 많은 차라 내가 정말 애정한다.

차를 만들 땐 어린 감나무잎 새순을 따서 덖은 후 말려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죄다 분쇄해서 팔고 있기 때문에 사실 새순인지 묵은순인지 모르겠었다. 

그저 새순이려니 하고 믿고 마시는 수 밖에.

그런데 이곳에서 산 차는 분쇄되지 않은 감잎이다.

크기와 두께를 보아하니 

새순도 맞는 거 같고..

턱 없이 적은 양에 비해 가격은 비쌌지만

그래도 좀 감동이었다.

아껴먹으면 되지 뭐..

ㅜㅜ




표일배에 첫잔을 우린다.

이렇게 차를 마실 때마다 제대로된 다기구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늘 생각한다.

늘 커피를 마실 때 사용하는 핸드드립용 주전자에 

세차가 필요한 중국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표일배

찻잔은 작아서 번거로우니 언제나 머그컵이다.

그런데 바쁜 생활에 언제 다기구 꺼내서 차를 마실까 생각하면 자신 없고

이미 차와 다기구를 보관하는 찬장이 꽉 차서 뭘 더이상 들일 수가 없을 지경이니

오늘도 참는다.

간편하게 내려서 얼른 방으로 들어가자.




1인용 표일배라서 두 번은 우려야 우리 부부가 마실 수 있다.

사마도요 표일배를 쓰고 있는데 이 녀석 정말 우리집의 효자다.

하루에도 몇 번을 쓰고 있는데

아직 한 번도 아프지도 않고 제 할일을 해낸다.

덕분에 제대로된 다기구를 사고 싶은 충동을 늘 억누를 수 있다.





방으로 들어와 코타츠에 앉았다.

이불에 몸을 파묻고 차를 마시다가 내내 미뤄뒀던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집었다.

짠내 가득한 내 입안은 천천히 감잎차에 치유되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이렇게 늦은 밤이 되도록

책을 읽을 것이다.


차 맛은 그윽하게 떫고

밍밍하게 향기로우며

비타민이 가득하다는 믿음 덕분인지

기분이 좋았다.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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