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마실2015. 3. 2. 17:04



태국으로 가는 당일이다. 비행기 시간이 서 너시간 남았을 무렵 회사에 있는 남편으로 부터 전화가 온다.

"준비 다 했지?"

"이제 슬슬 짐 싸려고. 여행가방 어딨드라?"

"여태 뭐하고 여행가방을 이제 찾어? 3시간 후에 우리 비행기 타야해... 알아?"

"가벼운 옷이랑 화장품만 챙기면 되는데 뭐~ 그냥 홍대 태국 음식점에 마실 간다는 느낌으로 갈 거야."

"가서 또 엄청 먹어대겠단 얘기구만"


빙고!

설렁 설렁 대충 짐을 부려넣고, 안 챙긴 것이 있으면 현지에서 구입한다는 생각으로 인천공항으로 간다.

택시 안에서 보는 밖은 벌써 어둑 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아아...

굿모닝..

팟타이 먹고 싶어요..

나는 대상없는 무언가에게 하루 빨리 팟타이신과 접신하게 해달라는 기원을 하고 있었다.

그 때까진 평범한 실로 오디너리한 저녁이었다.




바글바글

인천공항 태국행 제주항공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다.

아따~ 팟타이 태국지점 인기가 상당하구만?

자네들도 나처럼 쌀국수 먹으로 태국가는 거요?

이민호가 광고모델인 제주항공은 상큼한 오렌지색의 뿜으며 나의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남편을 만나 수속을 마치고 

우리는 기내식을 상상하며 마음이 부풀었다.







하지만 비행기 탑승 후 아무리 기다려도 기내식이 나오지 않아..ㅜㅜ

정말 쪽팔림을 무릅쓰고 승무원 언니 불러서 물어본다.

"저기... 밥 언제 줘요?"

돌아오는 대답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 제주항공은 기내식이 없단다. 

다만 배고픈 승객을 위해 에어까페를 운영하고 있다면서 메뉴판을 가르키며

"천천히 보시고 주문해주세요"

메뉴판에는 신라면과 쇠고기 비빔밥이 전부였다. 오징어 짬뽕라면과 아채비빔밥이 있었지만 그건 괌, 싸이판 노선만 운영한다고.

저녁도 못 먹은 우리는 울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할인 항공권을 뒤진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다니.

너네 이래도 되는 거냐. 기내식을 안 줄거면 맛있는 걸 팔던가, 천천히 보시고 주문하라고? 뭘 천천히 봐! 달랑 라면이랑 군용비빔밥밖에 선택권이 없는데!

속상한 건 다른 승객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여기 저기 항의가 터져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비행기에서 기내식이 없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비행기 수속 2시간 + 태국까지 날아가는 시간 6시간 + 태국에서 짐 찾고 나가는 시간 2시간... 저녁을 먹었다고 해도 최소 10시간을 공복으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저가 항공이라는 뜻은 많은 불편을 감수하란 말과도 같은 것 같아서 배고픔과 피로를 삼키며 인내할 수 밖에 없었다. 


저가항공답게

의자 간격이 좁아서 불편한 건 당연했고

비디오기기가 없어서 영화나 동영상은 물론 에어맵도 확인할 수 없었다. 

나는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불안한 마음으로 비행기 바닥에 깔린 카페트의 비 규칙적인 패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담요도 주지 않아서 웅크리고 벌벌 떨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떤 승객이 승무원에게

"아니 우리 아버님이 대체 나이가 몇 이신데 담요를 안 줘요?"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국으로 가까워질 수록 비행기 안은 추워졌는데, 몇 만원을 내고 담요를 구입하기는 싫었던 승객이 항의한 것이다.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님이라는 노인의 심정은 어땠을까. 갑자기 내 마음까지 슬퍼지며 명심하게 되었다.

다음엔 절대 제주항공을 이용하지 않으리라.






이내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승객들이 라면과 비빔밥을 시키기 시작했고, 승무원들은 음식을 나르느냐 분주하다. 

비행기 안은 삽시간에 비빔밥 냄새, 라면냄새, 위스키 냄새로 진동한다. 식사 메뉴는 그렇게 엉망으로 구비해놓고 어째서 주류는 제대로 팔고 있는지 기가 막힌다. 덕분에 내 뒷자리에 앉은 중년의 남자 3인방은 독한 위스키를 마시며 시끄러운 수다소리와 함께 의자를 빵빵차고 있다.

배고프고 지친다. 이제 제발 자고 싶다. 밤 10시가 넘었지만 술을 팔아야 하므로 기내는 밝기만 하다. 소란스러웠던 승객들은 이제 취기가 올라 더 높은 데시벨의 소음과 불쾌한 냄새를 풍긴다.

"승객여러분 지금부터 기내 안전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식사를 하실 분들은 손을 뻗어 독서등..(딸깍)" 

조명을 낮추라는 방송을 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실수가 잦은 안내방송이 자주 흘러나오고 있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태국에 그렇게 정신없다는 짜투작 시장이 벌써부터 이 비행기 안에서 재연되고 있었다.

나는 잠들기를 포기하고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두통이다. 내 뒷자리에 앉은 중년 3인방 탓이다.

위스키를 물처럼 마셔댄 그들이 푸하- 하고 숨을 깊게 내쉴 때 마다 욕지기가 올라온다. 이렇게 비좁은 공간에서 위스키 판매라니.

나는 어느 곳 하나 도망갈 수 없는 비행기 좌석에 갇혀 그들의 숙취를 견뎌낸다.

3인방은 태국에 무슨일로 가는 것일까.

골프일까. 골프겠지. 골프이리라.

골프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더더욱 더 내 골이 빠개진다.

분노가 쌓이니 자연스레 승무원으로 눈길이 간다. 늘 미소짓고 있는 승무원의 안면근육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영화를 보여주지도 않고, 담요도 주지 않는 승무원들은 그래서 인지 더욱 친절하다.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미소 뿐이랍니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아서 눈길을 거두었다.

나는 내 빡침을 관리해야 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빡침이 도를 넘지 않게 하기 위해 수첩에 필사를 시작했다.





어느새 남편은 잠이 들었다.

누가봐도 퇴근하고 바로 비행기에 올랐음이 분명한 차림새로 꼿꼿하게 잠들었다.

우리 뒤에서 삼인방이 내장을 토해내려는 듯한 냄새를 풍기며 거친 숨을 쉬고 있는데도

안그래도 소란스러운 이 공간에서 커다란 엔진소리 가득 공명하는 이 곳에서 잠을 자고 있다.

승무원이 지나가다 깨우면 살짝 눈을 떠

"오늘 자 뉴욕 타임즈 부탁해요"

라고 할 정도로 시크한 남자의 모습으로 자고 있다.

도무지 이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풍모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따듯한 남국의 거리를 이 남자와 손을 잡고 걷는 생각을 한다. 

여전히 창 밖에 하늘은 검지만, 카오산 로드의 팟타이와 로띠가 멀지 않았다.






태국 수완나 폼 공항 도착.

바로 뛰쳐나가고 싶지만 그 전에 유심칩을 끼우기로 한다.

유심칩부터 끼워야 태국에서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쓸 수 있다. (태국에 로밍해가는 건 바보짓)

공항 내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고 이미 많이 줄이 서 있기도 해서 AIS는 쉽게 찾았다.



 

바로 옆에 똑같은 서비스를 하는 다른 브랜드의 가게가 있지만 나는 AIS로 선택.

왜냐면 나는 코리끼가 좋으니까.

태국에는 코끼리 상표가 유독 많은데 AIS기업도 마크가 코끼리이다.

코끼리는 사랑입니다.



일주일 짜리면 100밧, 우리 돈으로 만원정도면 태국 내에서 실컷 쓴다.

일주일이라고 말하고 폰 건내주면 알아서 유심까지 끼워줌.

아이폰, 안드로이드 기종 상관없이 모두 가능.



폰에 유심칩까지 끼우고 나니 이제 정말 태국에 온 기분이다.

상쾌하면서도 독특한 수완나 폼 공항의 특유의 냄새를 확인하고서는 그제서야 좋아서 방방 뛴다.

태국이다. 태국이야. 

내가 정말 사랑하는 곳, 그리웠던 곳.

나는 태국에 다시 왔다.

결혼을 하고서 그 사람의 손을 잡고

나는 태국으로 돌아왔다.

제주항공의 불쾌함이 아주 조금도 남김없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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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주 항공으로 방콕을 다녀오셨군요! 저는 얼마 전 하노이 왕복 제주항공을 이용했는데, 갈 때는 면세점 안에서 밥 든든히 먹고 바로 비행기를 탔고, 올 때도 면세점에서 샌드위치 사 먹고 비행기 안에서는 하노이에서 사놨던 빵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어요. 배고픈건 뭐 이렇게라도 해결할 수 있었는데, 정말 좌석 좁은것은... 라오항공의 프로펠러 소형 비행기보다 좁고 불편하더라고요. 뭐, 저가항공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죠... 그래도 에어아시아는 물도 사야 하는데 제주항공은 물은 공짜니...ㅎㅎ 태국 들어가시는 이야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2015.03.02 17: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기내식이 없는 거 알았으면 절대 이용 안했을 거예요. 무슨 방콕을 제주가듯이 ㅠㅠ 그래도 태국에서 너무 행복해서 흐흐
      찬찬히 다녀온 여행기 풀어볼게요. 방문 고맙습니다.

      2015.03.02 19:09 신고 [ ADDR : EDIT/ DEL ]
  2. 6시간 비행에 간식 하나 안 나오는 건 좀 그렇네요.
    게다가 컵라면 하나에 5천원이라니...
    전 몇 년전에 제주항공 타고 일본 나고야 갔는데, 그 때는 감귤 주스 한 잔과 삼각 김밥 하나가 나오긴 나왔거든요.
    근데 좀 데워라도 주지,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상태로 줘서 먹고 탈이 나는 바람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부터 갔어요ㅠㅠ

    2015.03.02 23:1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차가운 삼각김밥도 정말 싫은데 ㅜㅜ
      하지만 술은 제대로 팔더라고요. 승객들이 빈속에 양주를 어찌나 잘 드시던지...

      2015.03.03 02:26 신고 [ ADDR : EDIT/ DEL ]
  3. 글을 정말 재미나게 쓰셔서 불편했다는 추억보다는 또 다른 느낌의 재매를 본듯해요~저도 내일 제주항공으로 태국가는데~꼭!식사후 탑승할게요!

    2016.06.17 16:34 [ ADDR : EDIT/ DEL : REPLY ]
  4. 페르난다

    저비용항공사 이용하면서 기내식을 요구하는 분이 아직 있군요.
    솔직히 서비스 생각하는 어르신들은 대형항공사 이용하는 게 나을 듯 싶어요.

    2016.09.27 20:40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