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마실2015. 3. 5. 19:36



선방했다, 라고 생각중이다.

서른 중반의 나이에 새벽 4시까지 카오산에서 놀았다니... 어쩌면 나 아직 체력이 괜찮은 건지도?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며 스스로 자위하고 있는 모양새를 보니 이미 늙은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지어진 입가의 미소가 다시 시무룩해진다. 

일단 좀 자야겠는 마음이 들자 곧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피곤해졌다.

숙소로 컴백하자.


다행스럽게도 태국에 오기 전에 트립어드바이저로 숙소를 예약해뒀다. 

대책없이 그냥 왔으면 이 새벽에 어쩔 뻔 했는가.

버디롯지는 카오산로드에서 교통 좋고 시설 좋기로 유명한 곳인데, 마침 특가세일을 하고 있네? 한화로 삼만 이천원이면 뭐 거저랑 다를 바 없는 거 같아서 일단 예약했다. 묵다보니 여러모로 좋아서 추천해본다.

마음에 들어 다음 날도 묵으려고 했으나 2박 부터는 정상가를 지불해야 한대서 가격만 물어보고 나왔다.

어플 잘 뒤져보면 세일 많이 하니까 카오산 가기 전에 꼭 예약하고 가자. 무턱대고 갔다간 방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호텔로비, 리셉션.

새벽 4시답게 고요하기만 하다.

직원 한 명이 앉아 사무를 보고 있지만 적막하기 그지없다.

고요한 자연 속에서 흰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가 

"청사~~~~~안이 벽계수~~~~야" 하며 시조를 읊을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이 호텔의 로비만 나서면 젊은 언니 오빠들이 술마시며 길거리에서 단체로 떼창을 한다고는 믿기지 않았다.

수영장 운영시간을 확인하고 키를 받아 올라간다. 






리뷰에서 읽었듯이 시끄럽기로 악명 높았던 2층이다.

카오산로드와 워낙 인접이라서 밤새 시끄러운 소리가 객실로 올라온다고.

(그래, 그러니까 여길 단돈 3만원에 줬겠지)

상관없다. 조용하게 쉴 생각 따윈 애초에 없다.

어쩌면 오늘 카오산 로드 주변의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누군가가 내가 지른 떼창으로 인해 잠을 못 이루었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떼창의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의 신분이므로 시끄럽기로 유명한 201호에 당당하게 입장했다.

하지만 이미 시간이 늦어 떼창도,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고, 방 안은 조용했다.




남편이 침대 위에 올려있는 코끼리를 보고 귀여웠던지 픽 웃으며 욕실로 들어갔는데, 곧 나온다.

"여보, 욕실에 수건이 없는데..?"

.....

바보군. 대체 이 코끼리는 뭐라고 생각한 거지?

"이 코끼리 한 마리에 수건이 3장이야"

라며 코끼리 다리 한짝을 분리하여 남편에게 건냈다.

아차차, 라며 웃는 남편이 귀엽다.

보면 볼수록 내 남편은 참 귀엽단말야. 멍청한 것이.




코끼리 수건 옆에 놓여진 메모

아, 좋아라.

친구 E양에게 버디롯지 침대에서 베드버그(Bed Bug)가 출몰했다는 이야기를 본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터라 사실 마음이 안 좋았었다. 싼 숙소에 묵으면서 깨끗한침구를 바라는 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이라고 생각하며 베드 버그에 대한 불안함을 인내하고 있었는데...

짧은 영어 실력으로만 봐도 침구를 매일 빨아서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 아님?

실제로 침구 뽀송뽀송 했고, 베드버그같은 건 전혀 없었다.

진짜 꿀잠 잤음.




방에 도착해서도 먹고 마셨다.

별다른 얘기를 한 건 없고 주로

"우리 내일 일어날 수 있을까?"

"일어나야해. 나 아침 수영에 로망있단말야"

와 같은 다짐의 말들이다.

아침 수영장은 오전 8시에 오픈하고, 지금 시간은 새벽 5시이다..

지금 자면 우리는 몇 시에 일어날 수 있을까.





있을 거 다 있다.

고급이라고 할 순 없어도 묵는 동안 전혀 불편함은 없다.

샤워가운 질이 도톰하고 괜찮아서 좋았고, 옷걸이가 많아서 좋았다.

신발 넣어둔 곳에 런드리 백은 여행 내내 두고두고 유용했다. 돈 받는 거 아니니 체크아웃 할 때 가방에 챙겨나오는 것을 추천함.

욕실에 저 진공청소기 같이 생긴 이상한 기구는 헤어드라이기다. ㅋㅋㅋㅋ

좀시끄럽지만 기능 잘 됨.






냉장고를 열어보니 그득 그득

옆에 가격표가 있어서 차마 못 먹고 무료인 물만 먹는다.

차가운 물을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






베란다라고 하기엔 굉장히 조악하지만

창문 하나 없는 게스트 하우스가 부지기수인 상황에 고급지지 않다고 투덜거릴 때는 아니지.

달랑 3시간을 자더라도 푹 자야 한다는 생각으로 베란다에 달린 덧문을 닫는다.

자야한다.

기필고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수영을 할 것이다.

남국에 왔다면, 수영을 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이른 아침에 잠이 들었다.













드디어 아침, 보다시피 일어나기에 성공해서 옥상에 있는 수영장으로 왔다.

으흐흐흐흐흐흐

음식물 반입 금지라고 써 있는 걸 보고 

"오키도키"라며 대답하고

설레임 가득 안고 수영장으로 진입.







오, 시설 죽이누만.

아침이라 그런가 사람도 없고

물도 깨끗하고.

정말 시조 한 가락 불러야 할 거 같은 비주얼..

저 돌고래 튜브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거라길래 수영 못하는 우리 부부가 타보기로 했다.






ㅋㅋㅋㅋㅋㅋ

남편과 내 몰골이 말이 아니다.

눈 땡땡 부은 것좀 봐 ㅋㅋㅋㅋㅋ

하긴 뭐 잔뜩 먹고 서너시간 자고 올라왔으니 그럴만도 하네.





코끼리 덕후 아줌마의 수영 실력.

아줌마, 여기 목욕탕 아니예요.






수심의 깊이가 1m 60이라서 수영할 줄 모르는 나는 이렇게 수영장 주변으로만..

아 정말 수영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었다.





수영장 곳곳에 비치된 태닝 의자

저기 앉으면 왕이 부럽지 않을 거 같은 풍모가 될 거 같아서 앉아 봤는데

현실은 그냥 뭐 무수리더라.

역시 사진의 완성도 얼굴




"아줌마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여기 목욕탕 아니예요"

"아유 뭐 어때. 사람 하나도 없구만~" 

ㅉㅉㅉ 소리를 내며 남편은 사진을 찍고 나는 이러고 시간을 보낸다.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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