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마실2015. 3. 16. 13:27



E양을 처음 만난 건 20대 중반, 일찌기 인도로 배낭여행을 갔던 때 였다. 나는 당시 스타벅스 바닐라 프라프치노처럼 뽀얗고 볼록 솟아 있는 타지마할의 탑들을 뒤로 하고, 저녁이나 먹을까, 하며 헤메던 중이었다. 심한 공복탓이었는지 누가 먼저 인사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좌우간 우리는 낡은 게스트 하우스 식당에서 늦은 밤까지 깔깔대며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관계는 주욱 이어져 어느새 삼십대 중반, 같이 늙어가는 처지다. 같은 시간을 살아내며 우린 직업이 바뀌기도 했고, 조카를 얻기도, 결혼을 하기도 했다.

인생은 가끔 쌉쌀하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타지마할의 지붕같은 달콤한 크림맛이 우릴 달콤하게 덮어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우정은 얼마나 달콤했던지 뱃살을 잔뜩 동반한 채 성장하고 있다. 그래 뭐, 달콤함은 칼로리를 동반하는 법이니까.

응?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아무튼 이 곳에서 오늘 E양을 만났다.

아줌마들이 까치산 역 까페베네에서 계모임하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동반한 채.

엊그제도 목동의 한 커피숍에서 본 E양인지라 별로 반갑다 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일단 격하게 팔을 흔들며 웰컴 카오산,을 외쳐본다.





반갑구나. E양아..

태국에 20일이나 여행할 예정이라니 부럽구나 E양아..

아직 솔로여서 론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는 내게 종종 나처럼 유부월드로 진입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곤 하는데,

나는 그 때마다, 그래 이년아, 너도 유부녀 되서 태국을 큰맘 먹고 4박 5일 타이트하게 와봐야 론니한 너의 지금 생활이 진정 한 마리의 프리윌리같은 삶이었구나, 하고 느끼고 백 투더 솔로를 외칠텐데.. 라며 말해주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며 살갑게 카오산을 워킹어라운드 한다.

종일 걷어서 혹사한 내 육신에게 마사지라는 은공을 선사하려던 참이다. 비록 동행하는 E양은 아직 본격적인 여행 전이라 딱히 쑤시고 결리는 곳이 없어 마사지에 별 생각이 없을지라도.


태국에서 원래 하루에 한 번은 마사지 받는 거야,라며 혹세무민의 전형적인 멘트를 날려가며 E양을 마사지샵으로 데려간다.

다행이다. E양은 순순히 따라오고 있구나.






낮엔 나무 위에서 지져귀는 새들에게도 시끄럽게 굴어 미안하다는 듯이 조용하게 행동하던 인간들이

밤이 되니 새들이 잠들어 있는 나무를 뽑아 거꾸로 세울 법한 기세로 시끄럽게 변한다.

한산하기만 했던 길들은 어느새 여행자들로 북적이면

비로서 평화종식 전쟁협약을 맺을 듯한 기세로 노점 레스토랑에서는 음악을 쿵쿵 울려댄다.





 


가이드북에 높은 별점으로 올라있다는 치와스파는 확실히 명성대비, 가격대비, 여러모로 두루두루 훌륭한 곳이다.

훌륭한 맛사지사의 손길에 감복한 우리들은 팁을 주기 위해 잔돈을 찾고 있었지만 그들은 우리가 부탁한 기념사진만 찍어주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떡판에 인절미 녹듯이 흐물흐물해진 우리는 괜한 죄책감에 어떻게 하면 그들을 찾아내서 팁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에프터 티가 나왔다.

에라 모르겠다, 차는 마셔야지, 우리는 홀홀 불어가며 차를 마시고는 뻔뻔하게 나왔으니, 이 글을 보고 계신 카오산에 치와스파를 방문한 여행객들이여. 우리 대신에 마사지사에게 팁좀 주시라.

흠...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팁은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호텔 청소비 명목으로 테이블 위에 팁을 올려두면 어찌나 안 가져가시고 정리해서 테이블 위에 올려두시는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아껴진 돈으로는 밥과 술을 먹는다.

여행비는 어떻게든 여행지에서 소비해야 한다는 이론인 일정경비의 법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는 탓이다. 노점 레스토랑에 앉아 술과 쌀국수를 시키고, 낮에 마트에서 사온 망고스틴을 올려 놓으니 금방 황홀해진다.

난 오늘 대체 몇 끼를 먹었는가.

내 위장은 태국에서 호강하는가, 고생하는가.

내 알바 아니고.

쌀국수 한 입 후루룩 말아 넣으니 

아아. 맛있다.

확실히 입은 호강이구나.









먹고 

마셔댔더니

취했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못생긴 석상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주사를 부렸다는데 

기억에 전혀 없다(고 우기고 싶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E양과 서로의 신나는 여행을 위해 건배까지 마치고 우리는 헤어졌다.

내일이 되면 E양은 북쪽의 치앙마이로, 우리는 남쪽의 코창으로 간다.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열차에 몸을 싣고 헤어지겠지만 우리는 곧 한국의 강서구에서 만날 것임을 알기에 쿨하게 헤어지고 발마사지를 받으러 간다. 갑자기 왜 또 발 마사지냐고?

"아까 마사지 좋았지? 그 정도면 두 시간 받을 걸..."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는 길에 생전 처음 마사지를 받고 감화감동한 남편이 한 말에 탄력받은 내가 2차 마사지를 위해 거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마사지사는 나를 보며 수줍게 웃으며 일랑꽃을 주셨다.

뭘 또 이런 거 까지...

달큰한 꽃냄새를 맡으며, 이거 먹어도 되나? 되게 맛있는 향이 나는데? 라고 생각할 즈음 업청난 악력이 내 종아리를 휩쓸고 지나간다. 깜짝 놀라 마사지사를 보니 좀 전에 수줍은 미소는 온데 간데 없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내 종아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렇게 내 종아리는 마사지사의 집중 악력에 공격받아 2차로 떡판의 인절미가 되어간다. 그 때까지 퉁퉁 부은 내 다리는 덕분에 기사회생해 가고 있었다.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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