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마실2015. 3. 18. 02:02




오늘은 코창으로 가는 날이다. 동대문 여행사의 아저씨의 준엄한 명령에 따라 아침 8시까지 집합해야 하건만 눈을 뜬 것은 7시 40분.

어차피 코 앞이니까 괜찮아. 얼른 씻고 나가면 돼, 라는 생각을 했지만 배가 아파.

많이 아파.

참을 수가 업시 아파.

응^^ 나 지금 부터 더러운 얘기할 거야. 

원래 이런 얘기는 듣는 사람도 거북하고, 하는 사람도 쪽팔리고해서 자체 검열로 잘라내야 하는 소재이긴 한데, 

뭐 속된 말로 나만 똥 싸나, 너도 싸고, 저 사람도 싸고, 이 사람도 싸는 게 세상 이치인데 뭐 어때(라고 말은 하지만, 내가 처녀의 신분이었다면 절대 쓰지 않았겠지)


이야기를 마저 이어보면,

배가 아픈 나는 화장실 변기에 다소곳하게 앉아서 그간 내가 먹어온 음식들을 만나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들은 날 만날 생각이 없었지.

생각해보면 당연했어. 나는 그간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철저하게 따랐고, 물을 포함해서 국물도 가능하면 먹지 않았거든. 이것은 혹시라도 물배가 차게 되면 음식(고기)을 더 못 먹을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 비롯된 생각을 충실하게 행동으로 옮긴 것 뿐인데, 이러한 식습관은 곧 섬유질과 수분부족이요,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변비라... 아멘.

나는 곧 코창으로 출발해야 하는 긴박한 시간에 변기에 앉아서 변비를 저주하며 평소 홀대했던 신의 도움을 받기 위해 찬송가를 부르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일단 3분만 앉아 있다가 안되면 포기하고 씻자, 라는 생각은 곧 

5분만,

7분만,

으로 늘어나며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손목시계를 잡고 떨었다.

소식이 없으면 아예 없던가, 한 때 나의 장에 존재하고 있던 나의 분신들은 이미 얼굴을 빼곰히 내밀고 있어서 중간에 끊을 수도,

그렇다고 너무나 슬로우리하게 나오는 그들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처지였는데.. 

그런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나는 얼마나 지혜로웠던가.

돌이켜보면 변기와 수전이 꼭 마주보는 방향으로 되어 있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었다. 앉아있는 곳에서 손을 뻗기만 해도 샤워기가 쉽게 잡혔고 조금의 유연성을 발휘하여 발을 뻗으면 샴푸를 끌어올 수 있었다.

그렇다. 나는 싸면서 씻었다.

싸면서 머리를 감고 헹궜다.

싸면서 세수를 하고

역시 싸면서 양치를

으헝헝헝 ㅜㅜ

시바, 나 도저히 못 쓰겠어. ㅜㅜ


하여간 나는 주어진 시간 안에 잘 쌌고, 잘 씻었으며,

급히 동대문으로 달려나갈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화장도 못하고, 렌즈도 못 끼고, 빗질도 못하고, 옷도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대로 걸쳐입을 수 밖에 없는데

그에 따라 이제부터 내 개인 사진은 눈뜨고 못봐줄 정도의 비주얼로 다시 태어나니

뭐 원래부터 그다지 곱상한 외모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에라 모르겠다, 유부녀인데 뭐! 라는

유부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관계로 그냥 싹 다 마 공개하겠다.

유부녀가 되니 정줄 놓기 한결 간편하다?








동대문 여행사로 가는 길이다.

다들 눈에 졸음이 덕지 덕지하다. 그렇겠지. 카오산에서 아침 8시면 뭐 내 마음의 고향 계룡산 동학사에선 해도 안 뜬 시간일 것이다.

우리 역시 전날 E양과 술마시고 마사지 받고, 어쩌면 동학사 스님들의 굿모닝 타임인 새벽 4시경에 잠들었다. 

지금 내가 비록 장 속에 묵직한 것들을 비워내서 몸이 개운하긴 하다만, 어제도 3시간, 그제도 3시간 밖에 못자서 머리는 개운하지 못하다. 바퀴가방을 끌고 가니 돌돌돌 소리가 이 새벽 거리를 가득 메우는데, 이 리드미컬한 돌돌돌이 자장가의 4분의 3박자 선율을 닮은 거 같아서 심히 괴롭다.






어느덧 버스와 봉고차가 잔뜩인 도로가 나왔다.

코창으로 가기 위해선 장시간 버스를 타고 움직여 배로 갈아탄 후 단시간 움직이면 된다는데, 배야 어차피 같은 배라서 상관이 없지만 버스는 얘기가 달라 좀 복잡하다.

코창으로 가는 인원이 많으면 안락하고 에어컨 빵빵한 대형버스로 가고, 

인원이 적으면 대충 낑겨서 타고 더우면 창문을 내려서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수동으로 주입하는 반오토매틱적 봉고차로 가게 된다.

전자의 경우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 맡기 싫은 타인의 체취까지 맡아가며 하루 종일 이동해야 한다는, 다소 편차가 큰, 심히 1박 2일의 복불복스러운 시스템인 것이다. 

이동시간도 여행의 일부라고 가정할 때, 여행의 질은 버스의 질이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눈 앞에 탐나는 버스는 캄보디아로 가고 쳐다보기도 싫은 봉고차도 어디론가로 떠나자 

우리를 코창으로 데려다 줄 이동수단이 도착했다.

만세.

버스였다.

그것도 어여쁜 주황색으로 화장한 특대형 버스.






확인시켜준다 마이 티켓, 허즈밴드 티켓.

싣는다 짐.

싣는다 내 몸.

잠든다 레드선.

들린다 소리.

먹으란다 점심.

내린다 몸.










거스름돈 주지도 받지도 말자, 라는 신조가 이 휴게소의 창립 목표라도 되는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한민족의 통일을 염원하는 나라에서 온 것임을 알았을까. 이곳의 전 메뉴는 50바트(우리돈으로 대략 1700원)로 싹 다 통일되어 메뉴판에 적혀 있었다.

메뉴가 한 두가지도 아니고 볶음류와 구이, 탕 종류만 해도 수십가지였는데 모두 가격이 같다니.. 좀 더 빠르고 간편한 50바트 시스템을 좀 더 긴밀하게 살펴보고 싶었지만 휴게소의 특성상 빨리 먹고 일어나야 하므로 얼른 시킨다.

팟타이와 쌀국수다. 

이건 뭐 궁합이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는 관계 아니겠나.

떡볶이와 김밥, 쫄면에 만두, 팟타이와 쌀국수의 궁합은 세계 3대 음식 궁합의 반열에 올려놓아야 한다며 기쁘게 자축하며 젓가락을 든다.






 


맛있다.

일단 팟타이.

면이 얇아서 씹는 맛이 좀 약할까 걱정했는데, 야채를 많이 볶아서 입 안에서 아삭아삭 난리도 아니다. 면과 계란은 부드럽고 숙주와 양배추는 서걱이는데 잔뜩 담아진 땅콩분태 덕에 고소해져 전체적으로 통쾌하다. 

카오산에서 먹는 팟타이가 약간의 간식느낌이라면 이건 손색 없는 식사다. 보기엔 좀 볼품 없지만 플라스틱 그릇도 재밌고 보기완 달리 양도 든든하다. 역시 어딜가나 팟타이는 기본은 하는 구나 느꼈다.

이제 쌀국수.

세상에, 아무데나 들어가서 먹어도 맛있는 쌀국수인데 여긴 특별히 더 맛있네? 닭고기랑 오뎅이 주 재료인 쌀국수지만 국물이... 그래, 좀 식상하지만 끝내준다는 표현밖에 생각이 안 난다. 한 입 들이키면 아우 시원하다~~~~,라고 자연스럽게 말이 나와서 우리 외할아버지 빙의되는 맛이다. 깊고, 진하고, 적당히 짭잘하며, 감칠맛이 너무 많아서 한 입만 마실 순 없다.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싹싹 비웠다. 비우고 나서 고개를 들어 세상을 보니 햇살 참 쎄다. 덥다. 

여보, 디저트 어떠실랑가요?






아이스크림을 선택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립톤 아이스티 바.

바닐라 아이스크림은 그냥 좀 진한 바닐라 아이스크림 맛이었고,

립톤 아이스티 아이스 바는 그냥 립톤 아이스티 얼린 맛이었다.

기대하는 맛,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닌 그렇고 그런 맹물같은 존재들, 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슬 바다 보인다.

태국이라 하면 사람들은 옥빛 바다물을 상상하고 기대하고 찾아가지만 나는 이런 흙탕물인 바다가 좋다.

파라다이스를 가고 싶은 마음은 애저녁에 없었다. 그저 인간들이 살 부비며 사는 갯벌같은 곳이 좋았다. 파타야를 여행할 적에도 이런 느낌의 잿빛 바다를 많이 봤는데, 허상이 아닌 진실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런 볼품 없는 바다여야 비로소 친근감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마도 내가 바다에서 자라고 갯벌에서 컸기 때문이겠지.








이제 배를 타고 코창으로 들어간다.

배 참 낡고 정감있다. 

이대로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배고파..

여보, 컵라면에 맥주 어떠실랑가요?









배 안의 매점에서 똠양 컵라면과 창비어, 라오 감자칩을 구입했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이 놀랄까봐 얘기해 두는데 나는 똠양꿍을 매우 좋아해. 똥양누들도 좋아해. 똠양라면도 좋아해. 정신 못차리고 먹지. 내 잘못은 없어.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사진이 찍혔을 뿐이니까. 분명히 얘기했잖아. 오늘 나의 컨셉 및 캐릭은 유부부심으로 똘똘 뭉친 어글리 우먼의 결정체라고. 또 미리 얘기했잖아. 유부부심으로 수치심도 없다고. 무슨 얘기냐고?

내 몰골이 이렇다는 얘기.








































좋아하지마.. 웃지마...

이런 거 찍으면서 무슨 보물 발견한 듯이 기뻐하지마 제발..

사람들이 자꾸 나만 쳐다보잖아.

컵라면이 맛있어서 카메라를 뺏어서 지울 생각도 못하겠어.

안 지울테니까 나 몰래 N드라이브에 저장하지마, 걔는 무슨 죄야.








찍지마.. 

안그래도 아침부터 더러운 일화에 휘말리고 인생 포기하고 싶어지는데 이렇게 눈 버리는 사진을 찍어야 겠니.

니 마누라 병신같아서 좋니? 뭐 좋다고?

조용히 해. 사람들이 쳐다본다니까?

저장하지마, 안 지운다니까. N드라이는 무슨 죄야...

캬. 맥주는 겁나 시원하네.








맥주를 마시며 휴대폰의 GPS를 켜보니 1분 안에 코창에 도착 임박이라는 깜박임이 감지된다.

배는 전복되지 않고 무사히 도착했구나. 나는 맥주를 마저 비우고 코창섬에 내릴 준비를 했다.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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