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마실2015. 4. 2. 15:49

오늘이 며칠이지. 4월 2일 이구나.

마지막으로 여행기를 올린 날짜는 며칠이었지. 3월 21일이네.

나는 열흘이 넘게 블로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스님이 도 닦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포스팅함을 지향하고 있다며 그럴싸하게 포장질하고 싶다만 어쩔 수 없이 도둑처럼 죄책감이 찾아온다. 이런 속도를 가지고서야 어떻게 삶을 기록해나갈 수 있단 말이냐. 

하기야 나는 원래 게을렀다. 어쩔 수 없지 뭐.

날카로운 자기비판을 마치고 내 컴퓨터 바탕화면 - 블로그 포스팅- 태국 여행기 폴더를 연다. 싱싱한 고등어를 닮게끔 미리 손질해 둔 사진들이 각각의 폴더에 갇혀 10번 부터 번호순으로 정리가 되어 있다. 1번 부터가 아니라 왜 10번 부터냐면 이미 포스팅했던 사진폴더는 모두 지운 탓이다. 고로 나는 이제까지 태국여행기를 9번 포스팅했고, 이제 10번째를 앞두고 있다.

10번 째 포스팅이라고 뭐 다르겠냐. 어차피 기존의 포스팅 양식을 답습하여 배고픔으로 시작해 배부름으로 끝나가는 여정이다.

아, 배고프다.

또 먹는 거 타령이라고 부디 나무라지 말자. 원래 여행이 그런 거고,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나.

저녁인지, 야식인지 분간 안되는 시간이지만, 생선구이를 먹기로 합의 하고 택시를 불렀다. 아직 코앞의 론니비치도 안 가본 주제에 화이트비치에 진출해서 밥을 먹기로 했는데 그 이유는,

거기에 그렇게 유명한 맛집이 있다드라고?

확인은 해야 할 거 아님메. 크크..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호텔 로비 구석을 둘러본다. 각종 소설 및 잡지들이 무려 신간으로 구비가 되어 있었다. 

어쩐지 투숙객들이 석양을 바라보며 독서를 하는 모습이 많이 보이더라니.

나도 내일부터 문화시민답게 고만 쳐먹고 독서를....................하고 싶지만,

아아- 나는 까막눈이었지.

이곳은 세종대왕님을 모르는 미지의 세계였지.

무식해서 누리지 못할 혜택을 마주하니 염통 깊숙이 소리가 들린다.

이거슨 자존심에 스크라치 나는 소리여.

얼른 뭐라도 먹어서 이 스크라치에 기름칠을 해줘야 한당께?

씁씁 후후, 복식호흡으로 나를 다스리는 중에 남편이 눈에 들어온다.

....으응? 뭐지?







남편은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치 삶은 계란을 반 똑 잘라 그 안에 노른자만 파 낸 듯한 디자인의 계란의자에 앉아 앞뒤로 흔들 흔들.

의자의 삶은계란절단형적 디자인과 남편의 과묵함이 콜라보레이션되어 그 곳에선 정적 내지 고요함이 흘렀지만, 남편은 분명 신나 있었다. 

옆구리에 카메라를 둘러 매고 가열차게 흔들의자를 밀며 광대를 하늘 높이 솟아 올려 소리없이, 그러나 최대한 밝게 웃고 있었다.

아 뭐야. 

너 왜렇게 귀여운 건데.

순간 이성을 잃고 저 의자 구입할 뻔 했다.

저 의자만 있다면 남편의 이런 모습을 종종 구경할 수 있겠지.

그러나 나에겐 경제권이 없다. 사지고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히겠지. 

에잉, 남편은 귀엽기만 하고 담대하지 못해서 큰일이다.






밤하늘엔 달이 두둥실한데

남편이 카메라를 들고 나에게 춤 춰보라 하면 추지요.

일찌기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도 그 아름다운 몸짓에 반했다는 세계적인 안무, 곰 세마리.

그나저나 이 노래가 원래 돌림노래였던가.

달밤에 몸부림은 노래가 끝나지 않아서 택시가 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덕분에 택시에서 나는 지쳤고 남편은 한층 더 신난 모양새다.

이상하지.

나는 저렇게 3일밤은 샌 듯한 몰골로 피곤함을 하소연하며 수다를 떨고 있고

남편은 여전히 고요하게 신남의 에네르기를 방출하고 있다.

순간 이성을 잃고 저 택시 구입할 뻔 했다.

그러나 나에겐 경제권이 없다. 

남편이 귀여운 짓을 할 때마다 내가 경제권이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화이트비치에 내리자 마자 제일 처음 눈에 띈 건 로띠가게였다.

세상이 온통 시커매서 어느쪽이 바다인지도 모를 판국에 도로 옆자락에 찬란하게 퍼지는 기름진 로띠 도우냄새, 

홀린듯 다가가서 보니,

헐 뭐야. 바나나 로띠가 아니라 망고 로띠임?

어머! 이건 사야해! 

외쳐주시고 완 맹고 로띠 플리즈 주문 들어가니 

누가봐도 아저씨같은 젊은 청년이 반죽을 휘리릭 휘리릭 얇게 펴.

어머, 님 진짜 손놀림 예술이시다. 카오산에서 평생 로띠 구우신 분보다 더 노련하네?

감탄하고 있자니, 뜨거운 팬에 바삭하게 튀겨내어 곰방 망고를 담고, 

여기서 부터는 바나나 로띠랑 똑같다.

도우를 접어 마져 튀겨낸 후 접시에 담아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다.

이윽고 누가봐도 아저씨같지만 손놀림이 장인급인 젊은 청년과 아이컨택 시간, 청년이 내게 먼저 말을 건다.

"미일끄? 초우콜릿? 허니?" 

"미일끄, 초우콜릿 플리즈"

시럽 뭐 뿌려줄까, 라는 물음에 연유와 초콜릿이라고 말한 나의 네이티브 잉글리시를 보라.

뿌듯하고 자부심이 넘쳐 흐른다 막. 






뻥 안치고 바나나 로띠보다 15배는 맛있다.

바나나가 입 안에서 탱글탱글했다면 망고는 스르륵 녹는다.

탱탱한 바나나과육과 바삭한 도우가 입 안에서 겉도는 사이를 달콤한 시럽이 매워서 환장하게 맛있었던 게 바나나로띠라면,

바삭한 도우에 크리미한 망고가 사르르 녹아 이미 절정을 이루는 지경에 달콤한 시럽이 뒷맛을 탁 치는 것이 망고 로띠다.

망고가 질이 좋아서 그런가, 입 안에 들어온 망고에서 생크림의 향내가 퍼진다.

분명히 망고로띠는 시럽이 없어도 맛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

길거리에서 호들갑을 떨면서 먹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하루에 3개는 먹자는 아름다운 결론이 도출되기까지는 10초도 안 걸렸을 것이다.




 


망고로띠에 취해 비척비척 걷다보니 끝없는 노점의 거리가 펼쳐진다.

바닷가 마을 답게 생선, 해물구이에서부터 각종 식사류가 나를 유혹하지만,

안돼! 참아야 한다. 지금 이곳에서 먹어버리면 이따가 맛집에 가서 행복할 수 없을 거야!

단호하게 마음을 다 잡고 수십개의 노점을 지나친다.

아아,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매정한 측면이 있는 것만 가타.

'바다 술집'이라는 너무 맘에 드는 어감의 간판을 따라 들어가니 바로 해변이 나오고 

해변을 따라 이제는 또 끝없는 레스토랑이 펼쳐진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해변과 레스토랑 구경을 할라 치는데

도대체 내가 뭐가 좋은지, 비글처럼 달려드는 어린양 한 마리,

웨얼 이즈 유어 맘? 하고 물어보면

까르르르르르 라고 답하고

왓츄어 네임? 하고 물으면 

무조건 달려들어 안기고

고놈 참 활기찬 놈일세.

아 어쩌지... 내가 무작정 너랑 놀 수는 없잖니.

있는 활기 없는 활기 다 모아서 녀석을 떼어낸 후 도망쳤다.







해변에 레스토랑은 하나같이 다 이뿨서 그냥 맛집 가지 말고 이 중에 한 군데 골라서 

밥도 먹고 술도 먹으면서 저기 저 양언니들같이 섹시하게

아주 그냥 막 그냥 오늘 오드리 퇴폐미 한 번 제대로 부려줄까 했는데

해변에 레스토랑은 하나같이 다 이뿨서 한 집을 고를 수가 없는 바 

밥도 먹고 술도 먹으면서 저기 저 양언니들같이 섹시해질 수는 없다는 판단이 들어

아주 그냥 막 그냥 해변을 벗어나 소문난 맛집, 넝부아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레스토랑 앞에 서니 각종 생선들이 날 잡아 잡쇼~ 해가며 드러누워 있는데 눈깔을 보니 싱싱한 놈들이다.

손님이 맘에 드는 접시를 고르면 그 옆에 마련된 숯불로 옮겨가 바로 손질해서 굽기 시작하는 시스템인데, 

생선 숯불구이 냄새라...

집나간 며느리가 왜 돌아왔는지 알 듯도 하다.

일단 눈 앞에 보이는 핫핑크의 맛있어 보이는 생선을 골라 구워달라고 하니

어렵게 택시까지 타고 왔는데 생선구이만 먹을 수 있나, 꼬치도 좀 시키고 요리 하나도 더 시킨 후 음식이 나오길 기다린다.

기다리며 정갈하게 손도 씻었고 잡생각도 지웠다.

배고픔이 눈물처럼 차올라 목이 메인다. 

괜찮다. 이제 오로지 먹기만 하면 된다.








음식이 나오고 사진을 찍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대충대충 4컷을 찍고 난 후에 카메라를 구석에 아무렇게나 버려두고 떨리는 마음으로 요리를 하나씩 맛보았다.

뭔지 몰라서 손가락으로 대충 주문한 요리는 해물과 채소를 피시소스와 각종 양념으로 볶아낸 요리였다. 

중국식으로 쎈 불에 재빨리 볶아낸 듯한 느낌이었지만 맛을 보니 불맛 보다는 매콤하고 짭짤한 것이 태국식에 더 가깝다. 해물이 들어가 기름진 맛보다는 깔끔한 맛이 났다. 매콤하고 짭짤한 간 덕분에 심심하지 않게 잘 먹었다.

역시 밥을 비벼먹는 소스는 돼지갈비 국물처럼 농도가 걸죽하고 기름기가 좔좔 돌아 쌀밥을 감싸야 한다는 것을, 입 안에서는 감칠맛이 폭발하고 가슴에서는 감동이 폭발해야 비벼먹을 맛이 난다는 것을 나는 그 때 깨달았다. 

해물 시켜놓고 고기를 생각하다니, 나 좀 짱인듯.

소고기 꼬치 구이는 좀 별로다. 수확이라면 역시 섬나라에선 소고기, 돼지고기는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진리를 확인했다는 정도? 이제 이 집의 대표메뉴 생선구이를 드실 시간이다. 생선구이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이집을 맛집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생선아 너는 좋겠다. 살이 많으면 많을 수록 사람들이 좋아라 해주니,

라고 읖조리며 한 입 크게 뜯어보았는데

으헝헝 맛있다.

한국에서 먹는 고등어나 꽁치같은 애들이랑은 전혀 다른 맛이다. 걔들이 기름지고 살이 단단하다면 방금 먹은 얘는 담백하고 살이 부드럽다. 굳이 비슷한 맛의 생선을 찾자면 커다란 도미? 그러고보니 명절 때나 맛볼 수 있었던 도미찜같은 부드러움인데 꽉 들어찬 살에 고루고루 숯내가 배여있다.

심심하면 같이 찍어먹으라고 소스를 주는데 뭘 또 그렇게까지..

두손 모아 마구 마구 뜯어 먹는다. 그러나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아.. 

다 먹고 배 두드리며

해냈어! 승리를 자축하고 있는데 남편이 살포시 생선을 뒤집는다. 곧 감춰진 생선살이 눈 앞에 쏟아진다.

아이고야 못 먹겠다 못 먹겠어, 나 좀 살려주쇼.

생선이 너무 컸던 것이 오늘의 패인이다. 두명이서 저렇게 시키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이 무조건 남길지니,

토하기 직전까지 먹어도 남긴다.

식사값은 한 삼만원 냈나.. 

그래, 반성해. 우리가 너무 과소비했지. 

소화도 시킬 겸 마사지를 받으러 갈 건데 걱정이 앞선다. 마사지 받다가 토할 것만 같아서..









코창 마사지샵이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PINK라는 요상한 간판이 보여서 

여기 설마 이상한 마사지하는 데인가, 싶어

괜시리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고

여길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한 내적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간판을 자세히 보니 레스토랑이네? 

헐, 지금 생선구이파는 레스토랑 이름이 핑쿠인 거시야?

아니 왜 마사지샵에 아무래도 수상한 핑크레스토랑 간판을 걸어놔서 양 볼에 홍조를 띄게 만드냐고 따지고 싶었으나 태국말도 모르는 주제에 내가 너무 큰 꿈을 꾼 것이라, 조용히 마사지샵의 도어를 오픈하여 들어간다. 

분명 밖에서 볼 땐 허름하기 그지 없던 외관이지만 막상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세련된 현대식의 로비와 조명이 배부른 우리 부부를 편안하게 맞아주었고 로비 너머로 보이는 마사지 실은 넓고 쾌적해 보였다. 비록 마사지 실이 세련된 로비와는 너무나 다르게 다소 병원 8인실 같기도 하고, 단체 수용소같은 느낌을 받았다해도 뭐 어떠랴. 마사지만 시원하면 되지..................................만 마사지도 너무 엉망이었다. 그냥 꾹꾹 눌러주기만 한달까. 내 친구인 현주가 키우는 고양이도 이 정도는 하겠다 싶다.

시원하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은 마사지를 마치고 나니 배가 조금 꺼져있었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택시를 잡아타고 론니비치 와라푸라로 향했다.

시간은 벌써 자정이 넘었고, 택시기사는 요금으로 왔던 금액의 따따블을 부르길래 깍아서 따블에 왔다.

눈물이 난다. 그 돈이면 레스토랑 한 번을 더 간다.

부르르..









방에 도착하자마자 과식으로 인해 몸이 무거워진 우리는 각자 침대와 쇼파에 따로 눕는다.

- 정말 많이 먹었다. 그치?

- 응. 배좀 봐. 뽈록해~

- 괜찮아. 내일 하루종일 물놀이하면 빠질 거야..

이런 시덥잖은 대화를 이어가며 우리는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그래도 오늘 우리 참 잘 먹었다며 서로서로 기특해하는 밤이다.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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