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마실2015. 4. 3. 13:00

날이 밝았다.

오늘은 우리 부부의 여행일정에 꽤 특이한 날로써, 맨날 쳐먹으며 길거리를 손 붙잡고 비척비척 걸어가는 일정에서 벗어나 드디어 무언가를 체험하는 날이다. 

꼬창에서 체험할 수 있는 상품은 꽤 많다.

산을 트레킹할 수도 있고,

코끼리를 타고 놀러갈 수도 있으며,

장비 매달고 바다 속에 들어가서 대왕조개랑 아이컨택을 한다던가,

스피드보트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짜릿함이나,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늘을 나는 시원함 내지는,

오토바이를 빌려다고 자유롭게 섬 전체를 쑤시고 다니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선택한 상품은 관광객들 대부분이 한 번은 하고 돌아간다는 국민 관광 상품, 스노클링되시겠다.

꼬창의 스노쿨링은 커다란 배로 섬 4개를 돌아다니며 하루종일 스노클링을 한다고 하여 일명 4섬 스노쿨링이라고 부른다.

전날 숙소 앞에서 750바트, 우리나라 돈으로 인당 이만 오천원 정도 주고 손수 예약을 했고, 오늘 아침 8시에 숙소 앞으로 우리를 데리러 온다길래 우리는 7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조식을 먹으러 리조트 식당으로 내려왔다.






하아...

포스팅 하기도 싫다.

이런 거 먹고 이따가 어떻게 물고기랑 하루 종일 놀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달까.

힘 없어서 물 속에서 발차기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나.

그래도 와라푸라 리조트에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를 위해 짧막하게 조식썰을 풀어보자면,

햄- 맛 없다. 한 입에 바로 메이드인 미군부대임을 알 수 있게 이상한 냄새가 난다. 섬나라에선 고기와 햄을 멀리하라는 진리를 또 깨우치며

계란 - 오믈렛이나 스크램블이나 다 맛 없다. 부드럽지도 않고 고수가 잔뜩 들어가있어서 계란의 풍미는 404 낫 파운드 출력되는 지경.

빵이며 쥬스며 다 별론데 그나마 맛있는 거 하나, 과일이다.

씨가 있는 작은 바나나는 정말 맛있었다. 물놀이 하다가 지칠까봐 몇 개 숨겨서 가방에 넣었을 정도.

역시나 그 지역의 특산품이 채고신가 보다.







아침밥상을 물리고 이제 물놀이팀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약속한 시간에서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안 와.

코리언타임이라고는 들어봤어도 타이타임이라고는 들어본 적 없구만.

에라 모르겠다. 어제 예약한 여행사 직원 관상이 돈 떼먹고 도망갈 인상은 아니었던 듯도 싶고,

내친김에 그간 쳐먹으러 돌아다니느냐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로비에서 거나하게 잠이나 자고 있어야 겠다고 생각이 들 즈음

"우르릉 쾅!!!"

아니 이게 뭔 소리대?







이거시 말로만 들었던 스콜, 혹은 스콜성 소나기라는 거신가.

순식간에 주변이 어두워지고 돌풍이 불더니 비가 우박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다는 파도로 크게 넘실거리고 있었고 나뭇바닥에 빗방울이 닿을 때마다 탁탁, 장작이 타는 소리가 난다.

기막혀서 하늘을 보고 있는 와중인데 쟤네 뭐야. 

지금 이 날씨에 비바람 맞으며 저기서 티타임하고 있는 거야?

보고있나 티타임협회?

누군지, 어느 국적인지 모르겠으나, 쟤들 찾아서 상줘라.

어떠한 시련이 와도 우아하고 꼿꼿하게 티타임을 즐길 티타임 사랑꾼들이다.






이미 약속한 시간으로부터 40분이 지난 시점이다.

주변상황에 영민한 나는 이런 비바람에 스노쿨링을 할 수는 없겠다 싶고, 어차피 자동 캔슬되어 데리러 오지도 않는 구나, 판단이 섰다.

어제 받아둔 여행사 명함을 꺼내서

어..음... 투데이 스노클링.. 캔슬..롸이트? 라고 유창한 네이티브 잉글리시를 시전하니 곧

노노. 잇츠 노 플라블럼. 노웨이 디쥬 낫 스노쿨링팀 얼라이브드 옛?

이라는 말이 들려오니, 헐.

지금 이 날씨에 스노클링을 강행한다는 소리인가.

아이고야.

님아.

님도 알고 나도 알고

지금 스카이에 매니매니 레이니인데 내 소중한 목숨 다이하면 니가 책임을 지나? 

책임 지지도 못할 거면서 곧 우리를 데리고 갈 스노클링팀이 왔다.







어쩌지.. 어쩌지...

인당 이만 얼마 밖에 안하는데 그냥 포기하고 오늘도 쳐먹기나 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이 택시기사가 빨리 타라고 재촉해서 얼떨결에 올라탔다. 비는 내리고 분명히 노면이 미끄러워 사고 위험이 배로 증가했을 도로를 택시는 빠르게 달려 어딘가로 우릴 데려가고 있었다.

태국사람들 그렇게 안 봤는데, 생명에 대한 경각심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종족이구나. 

배에 타서 물에만 안 들어가면 되지 뭐.

근데 배가 뒤집어 지면 어쩌지? 나는 물에 뜨기라고 하는데 가여운 내 남편은 그대로 다이다이하는 것인가.

아니다. 배에 오르자마자 구명조끼부터 입히면 된다.

그나저나 이것들 보험은 들어져 있는 건가.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별별 생각을 하는 동안 우리는 한산한 항구에 도착해 예약한 배로 가고 있었다.

내내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가는 길에 귀여운 코끼리 모양이 그려진 배를 보고 간신히 용기를 냈다.

그래, 어차피 죽을 목숨이면 용감하게 죽자.

비장한 마음으로 배에 올라탔다.

하나님 부처님, 저 여차하면 물에 안 들어갈 겁니다. 흥.

 





그런데 배에 타자마자 날이 개기 시작하더니 하늘이 금새 밝아져.

바람도 없어졌어.

비도 그쳤어.

물에 들어갈 수 있겠구나, 정말 노프라블럼이었어. 

좀 전까지 생명에 대한 경각심이 없는 태국인이 순식간에 자연환경에 도가 튼 지혜로운 사람들로 보이기 시작한다.

해가 뜨니 당연히 선그리 껴주고, 붉은 색 이쁜 구명조끼 입어주고 나니 배시시 기뻐진다.






스노쿨링 포인트로 가는 길은 꽤 멀었다.

배 안에서는 기다리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는지라 심심한 나는 금새 잠이 들었는데, 남편이 자는 나를 찍었다. 

그리고 입장권 대신에 손등에 찍어 준 S문양을 찍었다.

이 자리를 빌어 남편에게 묻는다.

이 문양을 찍은 저의가 무엇이냐.

나는 이날 손등의 문양을 보며 도축된 돼지에게 매겨진 등급표같아서 기분이 불편하다는 말을 남편, 너에게 했다. 그런데 내가 잠든 동안 저 문양을 찍어논 저의가 뭐냐.

니 마누라가 S등급의 돼지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반증인게냐?

으헝헝 ㅜㅜ

하여간에 높은 등급의 돼지가 자는 동안 해는 더 높이 뜨고 날은 밝아져 바다 위에는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죽기 딱 좋은 날씨​ 바다 들어가기 딱 좋은 날씨다.






물에 곧 들어갈테니 스노쿨링 장비를 장착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드디어 수영도 못하는 부부, 물에 들어가는 구나. 

사실 멀리 태국까지 날아와서 맨날 먹기만 해대고 관광지는 모두 스킵하는 과감한 결단력을 행했으나 스노클링을 스킵하지 못했던 것은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은 유명한 수영고자로써 물에 뜨지도 못하는 육지형 인간이다. 

수영을 싫어하니 스노쿨링같은 것을 해본 적이 없고, 물고기에게 밥을 줘 본적도 없다. 그런 남편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기 보다 물 속에서 허우적 거리는 것을 구경하고 싶었다. ㅋㅋㅋㅋㅋㅋㅋ

구명조끼입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도 처음이래ㅋㅋㅋㅋㅋㅋㅋ

부침개 뒤집듯이 바다 속에서 막 뒤집어가며 물 맥여야지ㅋㅋㅋㅋㅋㅋㅋ

얼마나 귀여울 것이여 >.<

이 귀여움을 단돈 이만 오천원에 하루 종일 볼 수 있는데 당연히 해야지. 이걸 왜 안해 ㅋㅋㅋㅋㅋㅋ









물 속에 들어가기 10분 전, 슈퍼맨처럼 포즈도 취해보고 신났다.

물고기 밥용으로 미리 사두었던 식빵을 조금 떼어 바다에 던져보니

니들 삼 일 굶었니, 우르르 몰려들어 빵을 뜯어 먹기 구나.

역시 빵을 사길 잘했다. 이런 거 필요없다는 사람들 간혹 있는데, 모르시는 말씀.

물고기의 영역에 인간인 내가 들어가서 좀 놀겠다는데 이런 뇌물 없인 사랑받을 수 없는 법이다.

우리는 물고기의 사랑이 고프다.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아이컨택하고 사라지는 물고기를 보고 싶다.

저 발 밑에서 점핑하며 빵을 떼어먹는 물고기를 보고 있자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저정도.

우리가 원하던 강도의 사랑이다. 

기다려라, 너희들의 식량은 넉넉히 준비되었으니.









Posted by 오드리 byod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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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피에서 스노클링할 때 가이드가 준 파인애플을 들고 바다로 들어갔었어요. 형형색색의 작고 이쁜 물고기들을 기대하며. 그런데 옥돔 줄돔 가제미 같이 생긴.. 물고기라기보다 생선같은 애들이 입을 쪅-! 벌리고 텍사스 소떼처럼 달려들어서 파인애플 내동댕이치고 도망갔던 기억이 나네요. 운좋으면 작은 상어를 볼 수 있다는 곳이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상어는 보이지 않고...마침 일행중에 예고없이 달거리를 맞은 불운한 애가 있어서 "널 미끼로 쓰겠다"고 막 그랬던 생각이 나네요. ㅋㅋ

    2015.04.04 02:35 [ ADDR : EDIT/ DEL : REPLY ]
    • 으악 미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꽤 수심이 깊은 곳이었나봐요. 그 정도 큰 생선이라면... 제가 피피섬 갔을 땐 생선이 별로 없어서 좀 서운했었어요. 포인트가 좀 달랐나... 음..

      2015.04.04 03:38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