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마실2015. 4. 7. 18:45




만족도 100프로에 육박하는 스노클링이 끝났다. 이쯤에서 내가 꼭 칭찬을 해줘야 직성이 풀리겠는 물건이 있으니 바로,


바쉬 방수팩 되시겠다.

다른 방수팩들이 투명 비니루봉다리 같은 곳에다가 핸드폰 넣고 꽁꽁 싸매는 구린 방식을 고수하고 있을 때 이놈은 지향점이 달랐으니,

방수팩이라고 스타일리쉬하지 않다는 편견은 버려라.

일반 케이스에 뒤지지 않는 감각으로 승부해보리라.

라는 당창 포부로 태어난 놈이시다.

실제로 나의 하얀색 사과폰을 까만색 바쉬에 넣어보니 너무 고급져.

런웨이에 걸고 워킹해도 전혀 부끄롭지 않을 것만 같아.

그렇다면 물 속에서 사진은 잘 찍히는가? 

이 사람아, 내가 전에 포스팅했던 스노클링 사진을 보고도 모르겠나.


모르면 참고하시고.

http://byodri.tistory.com/269


사진 말고도 동영상도 잘 찍힌다만, 더불어 내 뱃살도 너무 잘 찍혀 있길래 도저히 공개는 할 수 없었다.

하여간에 바쉬, 넌 최고였어.

이렇게 쓰니 내가 무슨 바쉬에서 뭐 받아먹은 사람같은데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비록 케이스를 벗기는데 좀 빡치긴 하지만 그거 빼면 아주 훌륭한 놈이예요(사용법은 유투브를 참고). 여행갈 때 참 좋고, 평소에도 케이스로 쓰다가 더러워지면 물로 빨로 그래도 되니 개이득.

자, 이제 즐거웠던 스노클링은 잊고 다시 육지로 올라와 쳐묵쳐묵하는 여행을 이어나가 보면.







로띠를 먹는다.

배에서 내렸는데 선착장 부근에 팔지 않겠어? 엊그제 먹어본 망고로띠가 너무 환상적이어서 일반적인 바나나로띠는 쳐다도 보지 않기로 맹세를 했는데.

어머 세상에.

망고와 파인애플을 섞어서 로띠를 만들어 파네.

어머 세상에.

망고와 파인애플을 잔뜩 넣으니 사이즈가 어제 먹던 거에 두배야.

주세요 주세요 주세요.

플리즈 플리즈 플리즈.

바삭한 도우를 살짝 걷어내니 그 안에 망고와 파인애플이 빽빽하게 차 있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망고는 입에 넣자마자 생크림처럼 스르르 녹고 파인애플은 한 번 씹을 때마다 새콤달콤한 과육이 주르륵 흘러 입 안에 가득찬다.

아 시발.

너무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욕 한 번 했는데, 설마 이런 걸로 연말에 산타할배가 치사하게 선물같은 거 스킵하고 그러진 않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이 맛은 이번 생애에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이거 먹기 위해서라도 스노클링 한 번 더 할 판이다.










스위트 마이 홈, 와라푸라에 돌아와 샤워하고 석양을 보기 위해 라운지에 왔다.

노곤노곤 몸은 자연히 눈이 감기고









살며시 눈을 뜨면 내 발 끝에 해가 걸려있다.









- 한 낮의 뜨거웠던 모래가 한 김 빠져 부드럽게 가라앉으면 지평선이 고요하게 태양을 삼키는 그림같은 풍경.

- 눈 앞에 펼쳐진 건 오직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 뿐이어서 가라앉는 해를 보며 상념에 잠긴다

이것은 휴가를 생각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장면일테지. 분명 누군가에겐 생각만 해도 좋을 풍경이리라.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그보다 약간 지저분한 풍경이 좋다. 지금 내 눈에 있는 이곳처럼 말이다. 

이곳은 깔끔한 백사장 대신에 거칠고 못생긴 돌들이 해변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별 수 없이 파도가 거친 곳이며

눈 앞에 해가 지는 것을 보면서도 한 마리의 생선이라도 더 건져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어부가 보이는 곳이다.

부드럽고 건조한 모래 대신에 검고 습한 흙이 많아 오래된 나무들이 자라고

죽은 산호가 부서져서 떠밀려오는 평화로움 보다는 바다게가 먹이를 찾아 헤메는 치열함이 더 어울린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쨍쨍한 풍경에서 얻어지는 상쾌함보다는 삶의 고단함에서 찾아지는 안식이 더 편한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바윗돌 걷어내고 하얀 모래 부어 인공적으로 조성한 흔한 해변보다 이곳이 더 가슴절절하게 소중하다.











세상에 공짜는 드물다.

이 석양을 보고 마음 편하게 즐기려면 차라도 시켜놓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식사와 다르게 다행히도 이곳의 음료는 이제까지 모두 맛있었으므로 우리는 고민없이 아무 거나 주문한다.

남편은 이 정도면 망고 중독자가 아닐까 싶은데.. 하여간 망고쉐이크를, 조금 쌀쌀함을 느낀 나는 따뜻한 녹차를.

망고쉐이크를 빨대를 이용해 한 입 쭈욱 빨아올리자 마자 남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래, 이곳에서 망고음료를 시켰으면 맛 없는게 더 이상한 거다.







 


녹차도 당연히 맛있겠지. 

이건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그간 이곳에서 마셨던 음료들에 대한 통계값이며, 그것이 곧 신뢰로 이어진 결과다.

해먹에서 떨어지는 해를 보며 쉬다가 천천히 내려와 살펴본 녹차는 4대강의 녹차라떼와 비슷한 비주얼을 하고 있었다.

맛은 있겠지, 하고 마셔보면.

....................이게 뭔 맛이냐.

굉장히 쓴 해조류를 말려 갈아낸 후 뜨거운 물에 개어 낸 맛이었다.

말하자면 완벽한 실패였다. 

음료라고 모두 다 맛있지는 않구나. 

망고중독자라 놀려서 미안하다 남편이여. 특산품을 고른 너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남편의 망고 쉐이크는 양이 팍팍 줄어드는 반면 나의 녹차는 식어갈 뿐 언제나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불평할 생각은 없다.

떨어지는 해가 급하게 움직이고 있으므로.

조금이라도 이 순간에 녹아들고 싶으므로.











누가 보건 말건 흐느적거리며 춤도 추고싶고 노래도 부르고 싶은데 생각하는 것이 죄다 평화와 관련된 노래 뿐이다.

"위 아 더 월드~ 위 아 더 챔피언~"

"유아 낫 얼론~ 유아 낫 얼론"

사분의 삼박자가 주는 정서적 안정감 위에 세계 평화에 대한 노래를 꼬창 론니비치에 울려퍼......................................지게 하고 싶다만, 미안하다. 저 두 곡에 대해 내가 아는 가사가 달랑 저 문장 하나라서 길게는 못 부른다.










사실 오늘은 평일이라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춰 본 것이다.

어제처럼 서양인 언니 오빠들 비글됐으면 이런 몸치와 발음 쪼렙이 엄두나 낼 수 있었겠나. 덕분에 어제부터 타보고 싶었던 그네도 타보고 타국의 해변을 마치 충남 홍성군 서부면 죽도의 해변처럼 착각하여 친숙하게 놀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을 흘리다보니 드디어 숨이 끊어지듯 해가 떨어졌다.










어느새 파란 하늘이 검게 변하고 있었다. 정원엔 가로등 불이 밝혀있고 나는 아무 이유없이 야간 수영을 하고 싶어진다. 

낮동안의 열기로 물이 데워졌을까? 

캄캄한 이곳에서 수영을 하며 놀다보면 달이 떠있을까?

그러고보니 남편이 이곳에서 망고에 집착하는 행보를 보였다면, 나는 실내 수영장에 집착하는 행보를 보인 것 같다. 첫날 숙소에서부터 무리하게 수영을 하고, 좀 전까지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왔으면서 이곳에서 또 수영을 한다. 누가 보면 나 정말 수영할 줄 아는 사람으로 오해하기 딱 좋겠지만 아닙니다. 저는 튜브 없으면 안되는 사람이예요.

물장난을 치다가 멈춰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멀리서 찰박하게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파도소리를 듣다가 물장구를 치면 파도소리같은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파도소리와 내 물장구 소리를 번걸아 들으며 나는 좋았던 것 같다. 

원하던 대로 금새 캄캄해졌고, 하늘엔 달이 올라 있다.








쓸모없는 전등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

네모난 곽에 불투명한 유리로 창을 낸 이 전등은 보기에는 꽤 근사해보이지만, 도무지 밝지가 않아서 정글과도 같은 와라푸라의 길을 밝히는데는 별 도움이 안된다. 전등이 달린 위치도 나무 기둥의 중간이어서 식물은 보이지도 않는다. 캄캄한 바다에서 어부가 등대를 보고 방향을 찾는 것처럼 나는 이 전등의 쓰임새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방향을 찾아주는 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이다.

헌데 생각해보니 빛은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싶다. 

그래야 나무와 꽃들이 밤에 쉴 것이고, 지금처럼 밤 하늘에 달을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갑자기 후다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등 안에서 움직임이 포착된다. 도마뱀이다. 약한 불빛이라 뜨겁지 않아 도마뱀도 자유롭게 드나는 모양이지. 전등 안에 도마뱀이 머물 수 있다니. 사람 좋으라고 무조건 밝힐 게 아니라는 걸 이렇게 또 배운다.









 


방으로 돌아와 버릇처럼 트립 어드바이저 어플을 정독하고 있는데 빛나는 별 4개 반이 떠 있는 게시물이 있었으니, 옴마 맛집이네. 더구나 위치를 보니 와라푸라 리조트 부근이라고.

서양인 오빠 언니들이 하나같이 엄지척척 올리며 딜리셔스, 베리굿을 아낌없이 달아놓은 것을 보고 눈이 반짝하는데

남편을 쳐다보니 남편도 이미 눈이 반짝 반짝

아아, 이심전심, 부부는 참말로 일심동체가 맞구나.

두번째 저녁인지, 야식인지 모를 식사를 하기 위해 론니비치 맛집 더 키친에 왔다. 가장 유명하다는 똠양꿍과 곁들일 음식을 시키곤 주변을 둘러본다. 동화 아기돼지 삼형제에서 첫째 돼지가 짚으로 엮어 대충 지은 집같이 생긴 레스토랑은 정말 바람 한 번만 제대로 불면 폭삭 무너지게 생겼다. 가구도 신경쓰기 싫었는지 식탁과 의자, 심지어 테이블보까지 펩시에서 제공받은 플라스틱 가구로 통일했다. 

여기 뭐냐. 컨셉이 거지촌 건립도 아니고.

그나마 간판은 제대로 만들어져 있어서 찾아오긴 찾아왔다만... 맛에 대한 불안함이 최고조로 엄습해왔다. 곧 탁자 위에 음식은 쌓이고 우리는 똠양꿍부터 먹기 시작한다.

맛있다 ㅜㅜ

별 4개 반은 과장이 아니었구나. 

먹은 음식 하나씩 살펴보면,







 


똠양꿍 : 이 집의 시그니쳐 메뉴인 모양인데, 그럴만 하다. 

코코넛밀크를 넉넉히 부어 부드럽고 새콤한 맛과 매콤한 맛의 균형이 잘 맞추어져 있다. 남편은 이제까지 먹었던 것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했고, 나 역시 그렇다. 똠양꿍은 간을 조금만 잘못 맞춰도 너무 시큼하고 향신료 냄새가 강해서 두 번 숟가락을 가져가기 무서운 음식인데 외국인과 태국인들의 입맛을 모두 맞춘 적정간을 찾아낸 느낌이다. 한그릇 다 비웠다.

쏨땀 : 아우 여기 간 정말 잘 맞춰. 파파야와 그린빈이 좀 질긴 맛이 있었지만 당근과 토마토가 부드럽고 아삭거리니 괜찮고, 상쾌한 소스맛이 모든걸 용서하게 해준다. 맥주, 맥주는 어딨냐.   

너겟 : 맛있게는 먹었다만 이건 솔직히 실패한 메뉴다. 그냥 딱 우리나라 용가리 너겟 튀겨논 맛. 

밥 : 밥이 밥이지 뭐. 

시킨 메뉴 옆에 가격까지 친절하게 붙여놨으니 가격 감안하시어 론니비치에 묵으시는 분들 방문해봐도 괜찮아요.










 


이후의 일정이 어떻게 되시냐.

글쎄. 손부짭고 주변 산책이나 하면서 수다나 떨까.

이처럼 진취적이고 건설적인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니 과일 가판대가 있다. 

사야겠다 말아야겠다 생각할 겨를도 없다.

하우 머치? 오케오케 플리즈.

살점만 발라낸 망고 1키로를 건내며 점원이 느끼하게 웃더니 잠깐만 기다리란다. 이윽고

러브 플라워~ 라며 껍찔 깐 귤을 내민다. 낑깡보다 조금 더 큰 귤이지만 수박이라도 한 덩이 받은 양 괜시리 마음이 들뜨고 오버하고 싶다.

고마와요, 게이 청년. 물론 당신이 게이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100프로 게이였다우. 

으하하, 게이청년이 보기에도 우리가 되게 이쁜 커플인가 싶기도 하고, 하늘은 검지만 마음은 핑크하다.

마음만으로 고마운데 나중에 귤을 먹어보고 깜짝 놀랜다.

당도가 하늘을 찌를 기세야.

너무 맛있어.

그간 망고에 가려 쳐다도 보지 않고 있었는데 귤이 너무 맛있어.

어쩐지 카오산에서 서양언니 오빠들이 이거만 먹고 있더라니.

오늘이 꼬창 마지막인데... 이 맛있는 걸 이제야 알게되다니..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착찹해진다.









 


비척비척 밤길을 산책하다가 바람에 커튼이 나부끼는 요상한 건물이 보여 유심히 보니 마사지샵이었다.

받을까 말까 생각할 겨를도 없다.

오케오케. 타이 마사지 원 아우어 플리즈.

쇼핑이란 것이 이렇게 쉬운 것이었나, 싼 물가 덕분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대로 들어가고 닥치는 대로 구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 마사지도 참 별로인 것이

주물주물주물주물 그저 주물주물주물주물

마지막에 회심의 비법이라도 되는양 두피에 무엇인가를 발라주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 타이거 밤이었다.

곧이어 발바닥에도 발라주는 타이거 밤, 대충 아무데나 다 발라주는 거 같은데 뭔가 알고 바르는 듯한 신비한 척을 한다.

얼굴에도 바르려고 하길래, 단호하게

스톱!

외쳐주시고 일어났다.

화이트비치에서 받은 마사지도 별로였지만 여긴 더 하다.

마사지는 방콕이 진리인 것으로.







 



숙소로 돌아와 잠들기 전에 남편은 고민한다. 대체 무슨고민인가 들어보니,

지금 이틀 째 입고 있는 이 꼬질꼬질한 반팔티를 버려야 하는가. 빨아서 한 번 더 입어야 하는가.

곧이어 결심이 서셨는지 빨래를 시작했고, 곧 후회하더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오산에서 산 옷이 그렇지 뭐 ㅋㅋㅋㅋㅋ

나같으면 단박에 버렸을텐데, 남편은 그새 옷에 정이라도 들었는지 한숨을 푹푹 쉬며 끝까지 거품을 헹궈내고 바람 잘 통하는 밖에 널어두었다. 물빠짐을 아쉬워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내가 처음 물빠짐을 겪고 멘붕오던 시간이들이 떠올라 웃어버렸다.

과거에 내가 겪었던 경험들을 이제 하나씩 남편이 겪고 있다. 그걸 바라보는 심정이 이렇게 행복할 줄은 미처 몰랐다.








Posted by 오드리 byodri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