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밖/마실2015. 4. 9. 21:54



귀찮아서 후기같은 거 안 쓰려고 했는데 남편이 또 어떻게 알고는 

"후기 왜 안 써? 귀찮고만?"

이란 대사로 도발을 날리는 통에 노트북 뚜껑을 연다. 

야근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 술쳐먹느냐 연일 늦게 들어오고 있으면서 니가 뭔데 나한테 후기를 쓰라 말라인지 모르겠지만, 오해하지마라. 노트북의 뚜껑이 열렸을 뿐, 내 뚜껑이 열린 건 아니니까. 나 지금 기분 되게 좋아. 호호호. 오늘도 늦어만 봐. 호호호.


음... 그러니까 우리가 태국을 간 건 애초에 정해진 운명의 데스티니............가 아니고, 내가 평소에도 태국이란 나라에 환장해있기 때문이다.

따뜻하지, 볼 거 많지, 놀 거 많지, 인심좋지, 물가싸지, 음식 맛있지.

이러한 이유로 나는 처녀적부터 태국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드나드는 카운터가 높아질 수록 태국을 애정하게되었던 바, 일본 오키나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남편의 의견을 묵살하고 태국행 뱅기를 또 끊게 되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나의 여행기를 읽으며 심기가 불편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었거나)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나 역시도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는 것은 좀 짜증이난다. 이유는 공감대 부족에서 오는 '작가 혼자만의 감정 과잉'때문이다. 그러니까 여행기를 읽는 동안 작가는 신나서 온갖 상황묘사 늘어놓고 있는데 나는 가보질 않았으니 어떤 리액션을 취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답답하기만 한 상태가 이어지는 것이다. 인내심이 쪼렙인 나는 그래서 남의 여행기를 잘 읽지 않는다. 하지만 아기 싫어하는 사람도 지 새끼는 이쁘다고, 내가 다녀온 여행기는 내가 읽을 수록 재밌다. 그럼 됐지 뭐.


오랜만에 간 태국은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시내는 심시티의 현실판이라고 할 정도로 높은 빌딩이 들어서 있고, 계속해서 들어서는 중이었다. 그렇게나 심했던가? 러시아워 때의 교통체증은 서울과 진배 없었다. 중국자본의 힘은 대단하기도 하지. 곳곳의 금싸라기 땅에 영업중인 프랜차이즈가 대부분 중국계열이다. 나의 천사의 도시(방콕의 뜻)는 이대로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중국붐에 의해 제주도스러워지는가, 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내심 다행이다라고 생각되는 것은 아직 국왕이 살아있는 것이었다.



몇년 전 태국에서 나는 전날 마신 술이 안 깨 세상이 노랗게 보일 지경이었다. 수중에 가진 돈은 없어서 해장국수도 못먹고, 그야말로 거지꼴로 숙취 워킹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패션이 모두 노랗다. 내가 지금 헛 것을 보나 싶어 정신차리고 다시 봤더니 이번에는 길거리에 깃발도 온통 노란색으로 걸려있는 것이다.

"와이 투데이 옐로우?"

아무나 붙잡고 잉글리쉬 네이티브 스피커의 실력을 뽐내며 물었더니 그가 답했다.

"퐈 킹"

이런 씨, 내가 아침부터 좀 술냄새가 나기로서니 님 나한테 퍽큐라뇨, 지금 그게 관광대국의 문화시민으로 할 욕입니까? 라는 뜻을 담아 눈을 부랴렸더니 시민이 부끄럽게 웃으며 다시 얘기하길,

" 퐈 헬스 어브 킹" 

으응? 

그러니까 "For King"

그날을 태국의 국민들이 국왕의 건강을 위해 모두 노란옷을 입는 날이었다.

국가지도자를 위해 국민이 온 마음 다해 장수를 기원하는 나라라니, 오래도록 썩어빠진 정치인의 나라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현상이었다. 그때까지 민주주의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어 위심치 않았던 나는 절대왕정을 선택한 미개한 태국에 대해 손톱만큼의 정치자부심이 있었다. 

북한사람들이 김정일을 이렇게 사랑하겠지, 태국왕은 국민들을 얼마나 쇄뇌시킨걸까.

노란옷을 입은 그들이 안타까워 보였다. 그러다 호기심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태국역사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현 국왕이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급인걸 알게 되고나서, 더구나 세종대왕보다 여러모로 사생활도 훌륭하다는 것을 알게되고 나서는 나 역시 그들처럼 그들의 국왕을 사랑하게 됐다. 

그런 훌륭하신 양반을 김정일따위와 비교하다니 제가 잘모탰습니다 ㅜㅜ

지금은 나 역시 국왕이 오래 살기를 바란다. 국왕이 돌아가시면 나도 슬플 거 같다. 국회에 쓰레기같은 애들 많은데 걔들 목숨 다 떼어다 태국 국왕에게 주고 싶다. 살아있는 현군이라니.. 내 살아 생전에 그러한 현상을 보게 해줘서 기쁠 따름이다.

그 뒤부터 일 것이다. 내가 태국을 좋아라 했던 마음이 급물살을 타게 됐던 것은. 


개인적으로 처녀적에 돌아다닌 곳을 이제 유부녀의 몸으로 남편과 같이 갔다는 데 기분이 상콤했고,

그 남편이 내가 음식 위주로 동선을 짤 때 토달지 않고 따라와줘서 기뻤다.

이번 생에 기왕 태국 홀릭을 하게 되었으니 다음번 여행지도 태국이 될 거 같은데 더도말고 덜도 말고 이번 여행만 같았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코끼리들과 함께 건강하게, 너무 중국에 물들지 않고 잘 있어주길.. 

끝으로 태국병에 걸린 어느 환자의 재미없는 여행기를 꾸준히 읽어준 몇몇 분들 정말 고맙다. 당신들은 태국왕의 정기를 받아 꼭 장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태국 먹방여행기 진짜 끝.








 

Posted by 오드리 byodri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