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받자마자 짜증이 솟구쳤다. 저 삼단 띠지의 위용을 보라.
전해듣기로 김연수작가의 인품이 참 훌륭하다고 들었는데, 책만 봐도 짐작되고 남는다.
책 위에 띠지는 독자들이 제일 짜증을 내는 요소로, 만약 작가의 얼굴이 띠지에 박혀있다면 그것은 제일 높은 부류의 짜증나는 띠지로 평가받는다. 띠지는 마케팅과 디자인적으로는 도움이 될런지는 몰라도 독서하는 중에는 번거롭게 걸리고, 빠져서 책에 몰입을 크게 방해한다. 때문에 많은 독자들은 책을 사자마자 띠지를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곳에 좋아하는 작가의 얼굴이 박혀있다면 버리기도 참 송구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띠지를 끼운 채 책을 읽자니 한 페이지 넘어갈 때마다 책이 틀어져 버리는데...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작가들은 자신의 책을 출간할 때, 띠지를 생략하거나 간소하게 하자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책은 무엇인가.
아주 얇은 책 표지 위에 띠지를 두르고 그 위에 또 띠지를, 그것도 작가의 얼굴이 박힌 띠지를 둘러 출간했다? 어디서 이런 되먹지 못한 짓을 했나 보니 허허.. 사랑하는 문학동네 ㅜㅠ
야이 나쁜놈들아..이중띠지가 왠말이냐!!
표지디자인도 내용과 상관도 없고.. 그렇다고 이쁘지도 않고..
아오 부글부글..
띠지 싫다. 특히 작가 얼굴 띠지 너무 싫다. 이 책 진짜 너무 싫다. 보고있나 문학동네? 나라도 진상부려서 띠지척결 앞장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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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며 분기탱천한 것이 4월 10일, 오늘에서야 이 책을 다 읽었다. 책의 만듬새와는 달리 내용이 너무 좋아서 아껴가며 읽었기 때문이다. 한 겨울에 식량이 귀해 하루 종일 굶다가 하나씩 몰래 빼먹는 곶감의 맛을 알 거 같은 심정이다. 아껴가며 천천히, 나는 한 글자씩 뽑아 혀 위에 놓고 녹여먹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며 읽어도 감동이고
점심에 미역국에 밥 말아 먹으며 읽어도 감동이고
저녁에 똥을 싸며 읽어도 감동이었다.
책의 내용중에 작가가 특별히 맘에 드는 책 365권을 정해 서재에 꼽아놓고 노년이 되면 그 책들만 읽으면 살아가겠다고 생각한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 특별히 맘에 드는 책은 얼마 발견하지 못했다고도 덧붙였다.
나라고 뭐 다르겠냐, 나도 아직 몇 권 없는데 지금 내 기분으로는 앞으로 10년간은 내 서재의 스페셜리스트칸에 이 책이 꼽힐 거 같다. 아무 생각없이 신간 훑으면서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을 내 손가락 근육에 감사하고 있다.
책은 산문이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글쓰기를 연마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너무나 고마운) 소설 작법서다. 유시민 작가가 이 책을 두고 작법서 이상이라고 평했는데 나 또한 그의 생각과 궤를 같이하는 바이다.
책의 시작부터 작정하고 소설쓰기와 관련한 무궁무진한 팁을 전수하면서 시작되는데, 그러니까 케릭터 만드는 법, 플롯 짜는 법, 인물에 동기 부여하는 법, 인물 성격 묘사하는 법 등등 평소 궁금했으나 어디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내용들을 속시원히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잊지않고 글을 쓰는 자세랄까, 마음가짐이랄까를 꼭 덧붙이는데, 진정성있는 그 문장들에 절로 소설가에 대한 존경이 솟아오른다. 한편으론 그간 소설가로 살아온 그의 고통이 짐작되는 부분도 있어서 이유없이 죄송해지기도 하다가... 아, 이 책 너무 훌륭한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그냥 생각 나는 내용 좀 퍼와볼까 한다.
미문(美文)을 쓰려면 어떻해야 하냐는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답이다.
한 가지 흠이라면 글의 초반에 밝혔듯이 책의 삼중띠지로 성질이 벋치는 것.
책이 거지같으면 한 번 읽고 아무데나 던져둘텐데, 이 책은 내가 여러번을 반복해서 읽을 책이 분명하므로 부들부들...
지금 다 읽고 두 번째로 읽고 있는데 책을 손에 집어 페이지를 촤라락 넘길 때마다 띠지가 팔랑팔랑..
으 잊지않겠다 문학동네.. 너희는 내게 똥을 주었어..부들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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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지의 번거로움을 겪지 않으려면 전자책을 읽으면 됩니다...(응?)
2015.06.23 22:26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